인류의 역사는 도전의 연속이다. 인류는 다른 종보다 취약했지만, 유일하게 자연에 도전한 존재였기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그래서 ‘할 수 있다’고 되뇌면서 끝까지 도전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화라면 감동은 배가 된다. 4년 전 리우 올림픽 당시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할 수 있다’고 중얼거리던 모습을 보며 모두 울컥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늘 청춘이거나 남성에 국한됐다. 왜 나이 든 여성은 도전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걸까. 할머니는 꿈도 용기도 없는 걸까. 이 물음에 ‘카일라스 가는 길’과 ‘치어리딩 클럽’이라는 두 편의 개봉 영화가 답을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그들도 무수히 도전했고, 지금 이 순간도 도전하고 있지만 세상이 제대로 주목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이다.
지난 3일 개봉한 ‘카일라스 가는 길(감독 정형민)은 여든넷의 할머니가 2만㎞ 육로 이동 끝에 해발 5,000m가 넘는 티베트의 성지, 카일라스 산을 마주하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감독의 어머니이기도 한 주인공 이춘숙씨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할머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두 자녀를 키웠고, 자녀들이 독립한 후에는 경북 봉화의 산골 마을에서 평온하게 노년을 보내 왔다. 가장 멀리 가본 여행지가 제주도였다. 하지만 아들에게서 히말라야 여행기를 전해 들은 후 “함께 가보자”고 용기를 낸다. 한번 마음을 먹자 할머니는 곧바로 길 위의 여행자가 된다. 바이칼 호수, 몽골 대초원, 고비 사막, 알타이 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고원 그리고 마침내 티베트 카일라스 산을 눈에 담는다.
여정은 결코 쉽지 않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지프 안에서 멀미를 하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고산 지대 평원에 텐트를 친 후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한다. 영화 내내 시선을 잡는 건 주인공의 눈빛이다. 80대인 주인공은 처음 가는 여행길에서는 누구나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의 눈을 하게 된다는 걸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또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느낀 바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일기를 쓴다.
정형민 감독은 “보통 노인이라고 하면 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며 “하지만 어머니를 보니 우리보다 더 열정적이고, 세상에 대한 사랑도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젊은 세대들이 노인들을 그저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려고 하는’ 그런 존재로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며 “세상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자, 우리가 인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라고 덧붙였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 ‘치어리딩 클럽(감독 자라 헤이즈)’은 회원 8명의 나이를 합치면 500살이 넘지만 세상과 자신을 위해 응원을 하기로 결심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애리조나의 한 실버타운에서 탄생한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POMS)’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폼즈는 지난 2016년 영국 BBC가 선정한 ‘100인의 여성’에 선정되기도 했다.
영화는 항암 치료를 그만둔 후 남은 시간을 조용히 지내기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한 마사(다이안 키튼)가 셰릴(재키 위버) 등과 친구가 되어 실버타운 역사상 처음으로 치어리딩 클럽을 결성하고 치어리더 대회까지 출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세상은 이들의 계획이 불가능하다 여기지만, 도전을 결심한 인간의 의지는 강하다.
영화는 지난해 미국에서 ‘어머니의 날’에 맞춰 개봉했다. 그간 자연과 젠더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주목을 받아온 감독에 대해 영화 팬들이 가졌던 기대감에 다소 못 미치고, 명배우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영화의 주연을 맡은 다이안 키튼과 재키 위버는 1947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넷이다. 많은 여배우들이 나이가 들면 주름을 드러내기 싫어하지만 이들은 어깨를 쫙 펴고 자신있게 웃는다. 그 모습이 영화가 전하려는 인생의 아름다움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