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삶의 끝에서 만난 그들…극단적 선택, 그 뒤엔 [범죄의재구성]

모친 사망에 삶에 회의, 인터넷으로 만나 자살 시도

죽기 전까지 보듬고 위로…자살이 서로위한 마지막 선물

재판부 “가장 잔인한 일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서울 마포대교에 쓰여진 자살 예방 문구. /연합뉴스서울 마포대교에 쓰여진 자살 예방 문구. /연합뉴스



동반자살을 앞둔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각자 다른 이유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들은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세상을 떠난다. 죽기 전까지 위로하고 보듬는다.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이 극단적 선택 앞에서 동지애를 나누며 마지막 호의로 서로에게 죽음을 선물한다.

A씨는 2017년 모친이 사망한 후 직장생활과 대인관계에서 큰 문제를 겪었다. 이혼 전부터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존재는 매우 큰 것이었다. 죽음은 결심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게 더 힘들다. A씨는 인터넷에 ‘동반 자살 하실 분 도와주세요’라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고 B와 C를 만나게 된다.


자살을 결심한 세 명은 만나기 전 단체대화방을 통해 얘기를 나누었다.

“저도 어제 가불 땡기고 신불자 작업대출까지 해서 올인났네요ㅠ - 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죄송하네요 - 어유 다 그렇죠, 돈 있으면 죽을 일 있나요 뭐, 다 돈 때문이죠 - 네ㅠ - 고생은요 무슨 기쁜 마음으로 갑니다 - 질소중독 치사량 좀 알아볼 수 있나요? - 암만 AP해도 안 나오네요 - 저도 그거 찾고 있어요, 찾으면 바로 알려드릴께요 -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 우리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좋은 곳으로 같이 가요 - 무슨 일하세요? 저는 직업 없습니다 - 저도 백수 3개월차 ㅋㅋ - 너무 빨리 오신 거 아니에요? - 제가 좀 생각해 봤는데, 질소 혹시 부족할 거 같으면 제 핸드폰 파는 거 어떠신가요. 알아보니까 20만 원 정도 중고값 받을 것 같네요”


일면식도 없던 그들이지만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서로 의지하고 위로했던 것이다.



/자료=연합뉴스/자료=연합뉴스


울산 태화강역에서 만난 그들은 질소가스와 헬륨가스, 비닐봉지, 청테이프, 호스, 칼 등을 준비했다.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가스 밸브를 열어 삶을 마감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A는 죽음을 눈앞에 뒀지만 자살을 시도하던 도중 두려움에 깨어난 B가 C를 깨웠고 119 구급차까지 출동하는 바람에 자살 시도는 실패했다.

살인방조미수죄로 법정에 선 A는 삶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평소 가까웠던 여동생과 만나 생의 의지를 되찾은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 후 외롭게 시간을 보냈던 A에게는 수감 생활도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다. 울산 구치소에서 A와 함께 한 동료 재감인은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서 “동료 재소자가 A에게 자살할 용기로 발버둥 치며 살면 뭐든지 성공할 거라고 위로해 줬다”며 “수감생활 동안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 듣고 조언을 들으며 A는 지금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재판장님께서 법의 원칙대로 하시는 것을 압니다”라면서도 “A의 미래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범죄자지만 A의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결국 A는 징역 9월, 집행 유예 2년 선고를 받았다.

A에 대한 울산지법의 판결은 자살이 확산되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전한다. 재판장 박주영 판사는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피고인들이 전혀 일면식조차 없던 상태임에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나눈 마지막 대회가 자살에 대한 것이고 사심 없는 순수한 생의 마지막 호의가 죽음의 동행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생을 마친 누군가의 가족과 이웃이자 같은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자살을 막으려는 구호와 정부 대책은 난무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죽음을 결심한 사람 옆에 있는 또 다른 사람 한 명에게 달려 있다. 사소한 말 한 마디와 작은 관심이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사람을 꺼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판사는 다음의 말로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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