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토요워치] 기록과 폭로의 줄타기...회고록의 정치학

볼턴 비화 공개로 美정가 발칵

흐루쇼프 저서엔 北남침 드러나

처칠 회고록, 노벨문학상 수상

비난과 찬사 갈리는 양날의 칼

"공방의 무기 아닌 역사 담아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6월 말 출간한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의 판매부수가 100만권을 넘어섰다. 회고록은 15판 인쇄를 앞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국익보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우선해 국정을 운영한다고 폭로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덕분이다.

일각에서는 국가 기밀을 돈벌이에 이용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백악관 동료였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미국을 해친 반역자”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럼에도 회고록은 미국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돼 계속 팔려나가고 있다. 회고록은 훌륭한 역사적 기록이면서 살아 있는 정치학 교과서다. 감춰졌던 역사를 폭로하는 동시에 참회함으로써 역사적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유럽 지도자나 미국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회고록 집필을 당연한 의무처럼 여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회고록의 정치학’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니키타 흐루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회고록에서 “북한의 남침계획은 김일성 정권 수립 때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자의 긴밀한 협의로 추진됐다”고 밝혀 남침 사실이 확인됐다.


세계 최고의 전기작가로 꼽히는 슈테판 츠바이크는 “회고록에는 이름이 아니라 ‘인격’이 담기는 것으로 좌절과 성공, 인생과 정치적 역정의 모든 것이 가감 없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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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에 비견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은 회고록도 적지 않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은 노벨문학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회고록도 있다. ‘지난 일을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의 ‘징비록(懲毖錄)’은 1604년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임진왜란 회고록이자 교훈서로 7년 전쟁에 대한 반성과 대책을 담아 높은 평가를 받는다.

회고록은 존경을 비난으로 뒤바꿔놓기도 해 양면의 칼과 같다. 심리학자들도 회고록 출간 배경에 대해 보복심리학 차원에서 접근한다. 좌우를 뛰어넘는 실용주의적 정책으로 10여년간 영국을 이끈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회고록 ‘어떤 여정’에서 후임자 고든 브라운에 대해 “분석적 지능은 탁월하지만 정서적 지능은 제로인 고든은 요상한 친구”라고 코멘트해 ‘뒤끝’이 제대로 작렬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앨런 카스텔 UCLA 교수는 “회고록을 정치보복의 최후 장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공방을 벌이다 가장 마지막에 집어 드는 무기와 같기 때문”이라면서 “그렇다고 그 대안이 함구될 수는 없으며 사실 기록으로 후대의 평가를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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