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선수를 예우하는 영구결번(retired number)의 역사는 미국프로풋볼(NFL) 뉴욕 자이언츠에서 시작됐다. 지난 1928년부터 자이언츠에서 뛴 레이 플래허티가 주인공이다. 그가 달던 자이언츠의 등번호 1번은 1935년 은퇴 이후 영원히 플래허티만의 번호가 됐다. 미국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가 루 게릭의 4번을 영구결번에 올리기 4년 전에 이미 자이언츠는 1호 기록을 남겼다.
1925년 마권(馬券)업자 팀 메라(미국)가 500달러를 들여 창단한 자이언츠는 현재 구단 가치가 39억달러(약 4조5,800억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스포츠 구단 가운데 아홉 번째, NFL 중 세 번째로 비싼 팀이다. 지난해 올린 수익은 5억1,900만달러(약 6,100억원)다. 2001년의 1억3,400만달러에서 매년 증가세를 보이며 18년 동안 수익이 네 배 가까이 뛰었다.
자이언츠의 성공 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한 명을 꼽자면 팀 메라의 아들인 웰링턴 메라다. 그는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75년간이나 구단주 자리를 지켰다. 프로스포츠 사상 최장 재임 기록이다. 웰링턴은 리그 전체의 재정 건전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NFL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도 회자된다. 구단별로 차등이 크던 TV 중계권 수익에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해 균등 배분으로 바꿔놓은 이가 바로 그다. 1962년 정립된 중계권료 균등 배분 원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이언츠에서 아홉 살 때부터 볼 보이와 구두닦이로 일하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웰링턴은 암 투병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까지도 자이언츠의 모든 것에 열정을 쏟았다. 전현직 자이언츠 선수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는가 하면 연습 경기까지 거의 다 직접 관람했다. 나이·인종·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선수를 가족으로 대했고, “한 번 자이언츠는 영원한 자이언츠”라며 이적한 선수들에게도 정성을 기울였다. 영화 ‘캐롤’로 유명한 할리우드 여배우 루니 메라가 웰링턴의 손녀다.
웰링턴 시대 이후 자이언츠는 ‘네이밍 라이츠(경기장 명칭 사용권)’ 판매로 ‘대박’을 터뜨렸다. 17억달러(약 1조9,9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2010년 뉴저지에 개장한 홈구장에 이듬해부터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이라는 이름을 달면서 뉴욕 보험사 메트라이프로부터 돈을 받기로 한 것이다. 계약 규모는 25년 동안 연간 1,700만~2,000만달러(약 230억원). 이 돈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의 또 다른 주인인 뉴욕 제츠 구단과 나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스타디움 투어 때 이곳에서 공연했으며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팀이 가려질 결승전 장소이기도 하다.
올 초에는 구단 역사상 열네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지난해까지 16년간 자이언츠에서만 뛴 등번호 10번의 ‘원클럽맨’ 일라이 매닝이다. 슈퍼볼(챔피언결정전) 2회 우승을 이끈 명쿼터백으로, NFL 역대 수입 1위를 자랑한다. 매닝은 광고 수입을 제외한 연봉과 보너스로만 2억5,230만달러(약 2,960억원)를 벌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매닝은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건넸다. “웰링턴은 늘 ‘한 번 자이언츠는 영원한 자이언츠’라고 하셨죠. 제게는 영원한 자이언츠이자 오직 하나뿐인 자이언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