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B!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지난해 매출 17조원에 4,270억원의 이익을 남긴 A가 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는 기업가치는 시가총액 기준 2조6,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멀고도 먼 2012년 시가총액 11조원에 달했던 시절이 있긴 했다.) 지난해 매출이 7조원이라지만 7,000억원이 넘는 손실(전년도엔 영업적자가 1조1,279억원이었다!)을 낸 B의 기업가치는 15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객관적 실적은 A가 B를 압도한다. 자산규모도 A가 34조원으로 B(3조원)와 비교하면 11배에 달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A는 롯데쇼핑, B는 쿠팡이다. 이름표를 가렸던 베일을 걷어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여전히 수긍하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쿠팡의 기업가치 15조원은 말 그대로 풍문이다. 미국 나스닥 상장 얘기가 나오고 있고 그에 맞춘 투자자 로드쇼에서 제시된 숫자라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쿠팡의 공식적 대답은 “확인해줄 수 없다”였다. 2018년 소프트뱅크가 운용하는 비전펀드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을 당시 기업가치는 10조원이었다.)
年 50만대 테슬라, 1,000만대 도요타보다 비싸... 아리송한 기업의 몸값 |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어떻게 평가해야 객관적인 기업가치를 측정해낼 수 있을까.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영역이기는 할까. 100% 객관적이진 않더라도, ‘충분’할 만큼의 객관성은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객관적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투자의 기준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 기업가치가 100% 주관의 영역이라고 하면 재무제표는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투자의 기준은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극단적으로 투자라는 행위는 나쁘게 말해 ‘돈 놓고 돈 먹기’ 이니 기왕이면 발도 담그지 말아야 할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아몰랑’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일단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교과서적 해설법은 소개한다. 전통적으로 기업가치 측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금흐름이다. 기업의 본질적인 목적은 이문(利文)을 남기는 것. 영업활동을 통해 창출하는 현금인 영업이익(Operating Income), 조금 더 범위를 좁히자면 당기순이익(Net Income)이 가장 중요한 수치다. 기사에 흔히 나오는 말인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prise)’의 어닝이 바로 영업이익이다. 말 그대로 깜짝 실적이 나오면 기업의 주가는 오른다. 실적 전망치를 투자자들이 중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금흐름을 통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가 주가순이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다. PER은 주가를 주당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예를 들어 발행주식이 100만주, 당기순이익이 100억원인 기업 (주)고평이 있다고 하자. 고평의 주당순이익은 1만원이다. 발행주식이 100만주, 당기순이익이 200억원인 동종 기업 (주)저평의 주당순이익은 2만원이다.두 기업 모두 주가가 1만원이라고하면 A의 PER은 1배, B는 0.5배다. 상대적으로 봤을 때 (주)고평의 주가는 비싸고, (주)저평은 싸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익을 더 많이 내는데도 주가가 낮은 (주)저평의 주식을 사야 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론 그렇다. 헌데 현실과 이론은 다르다. 벌어들이는 현금의 상대적 규모가 늘어난다고 주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3·4분기 삼성전자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냈지만 당일 주가는 하락했다.
PER을 역산해 비상장 기업의 몸값을 계산할 수도 있다. 당기순이익에 PER을 곱하면 곧 100%의 지분가치(Equity Value)다. 상장을 앞둔 (주)무평이 있다고 하자. 당기순이익은 300억원이다. 동종업계인 (주)고평과 (주)저평의 평균 PER은 0.75배. 300억에 0.75배를 곱하면 (주)무평의 100% 지분가치는 225억원이 된다. (좀 더 심화학습으로 들어가면 여기에 총 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 등을 뺀 순부채를 더하면 전체 기업가치(Enterprise Value)가 나온다.)
감가상각전 영업이익(EBITDA, 업계 용어로 ‘에비따’라 불린다)이 보조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낯선 단어라 어려울 수 있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EBITDA란 영업이익에 현금흐름표상 감가상각비(실무적으로 무형자산 상각비도 포함한다)를 더한 수치다. 감가상각이란 이미 지출된 금액인 설비투자 등 자본적 지출(CAPEX)을 일정 기간 회계적으로 나눠 반영하는 회계적 기법이다. 쉽게 말해 이미 지출한 돈인 만큼 현재 실제 유출된 현금이 아니라 회계상으로만 쓰인 돈이라는 뜻. 기업의 실체적 현금흐름을 파악하려면 영업이익에 이 감가상각비용을 더해야 한다.
EBITDA를 활용해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방법론도 많이 쓰인다. 여러 변수에 휘둘리는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보다 내재적인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시가총액은 1조8,500억원 가량.(매각 초기엔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두산밥캣을 제외한 인프라코어의 연결 기준 EBITDA는 5,000억원 안팎이다. 동종기업인 현대건설기계의 지난해 기준 EV/EBITDA 4.48배만 적용하더라도 기업가치가 2조2,400억원에 달한다. 동종업계 세계 1위인 캐터필러의 EV/EBIDA 9.66배를 적용하면 5조에 가깝다는 계산도 나올 수도 있다.
특히 EBITDA는 비상장 기업의 몸값 측정하는 사실상 유일한 기준이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선 EBITDA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토막 상식 하나. 과거 막대한 이익을 내던 미국 기업들은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설비투자에 돈을 많이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M&A를 할 때 영업이익으로만 현금 흐름만 따지면 기업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EBITDA라는 지표를 고안해냈던 이유다.)
현금흐름이 아닌 성장세를 나타내는 매출에 초점을 맞춘 주가매출비율(PSR·Price to Sales Ratio)도 있다. 과거 IT버블 시기 닷컴기업의 기업평가에 활용했던 지표다. 주가를 주당 매출로 나누면 된다. 금융회사는 현금흐름이 아닌 순자산을 기업가치 평가의 잣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Price to Book-value Ratio)이 바로 그 지표다. 순자산이란 대차대조표상의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금액, 회계적으로는 총자본을 말한다. 이 주당 순자산으로 주가를 나누면 PBR이 된다. 금융회사 M&A에서 PBR 수준을 두고 셀러와 바이어가 옥신각신 다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신한금융지주는 I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는 PBR 1.1배를 적용해 2조2,989억원에 인수했고, 올해 KB금융지주는 푸르덴셜생명을 PBR 0.78배인 2조3,000억원에 품었다. 이 밖에도 현금흐름할인(DCF) 모형 등 보다 전문적인 방법론도 있다.
주가'꿈'비율까지 등장... 결국 아는 게 힘이다 |
그래서일까. 기업가치 평가 무용론까지 나온다. 과거에는 객관적인 ‘범위’ 안에서 주관을 섞어 기업가치를 측정했다. 객관적 틀은 재무제표에 나오는 이익이나 매출, 혹은 자산이었다. 헌데 시대가 바뀌면서 주식시장에서 이 틀에 맞지 않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테슬라가 그렇고, 니콜라는 더욱 극단적인 사례다. 최근 논란의 주인공인 신풍제약은 말할 것도 없다.(신풍제약은 현재 PER은 3,500배 가량. 한때는 6,000배 가깝게 가기도 했다.) 급기야는 주가‘꿈’비율(PDR·Price to Dream Ratio)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이 최근 이 PDR 지표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해당 산업의 전체 시장(TAM)에서 해당 기업의 점유율만큼을 기업가치에 반영하는 식이다. 타당한 방법론인진 아직 평가랄 것도 없다.(어차피 모든 가치평가가 주관적이라면 이 지표가 정교하냐 마냐를 따질 게 아니기도 하다.)
주식시장 바깥에 있는 비상장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른바 ‘빅테크’ 기업이 성장하고, 이에 발맞춰 벤처캐피탈(VC)의 투자기법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방법론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모험자본인 VC의 기업가치 평가법은 모호하다. 일단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정성적으로 판단한다. 이후 해당 기업이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투자하고, 그 금액에 맞춰 사후적으로 기업가치를 책정한다. 실적과 같은 계량지표가 아니라, 주관적인 투자유치 금액의 규모에 따라 기업가치가 정해진다는 뜻이다. 쿠팡과 같이 VC로부터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한 기업이 매출액과 영업이익, 자산규모 등 계량 지표로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롯데쇼핑의 기업가치를 넘어설 수 있는 이유다.
어째 갈수록 더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당혹해하진 말라. 실제 투자에 전 재산을 던진 이른바 ‘선수’도 최근 상황을 두고 당혹스러워한다. 1조원에 가까운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경영권 매입(buy-out) 투자를 하는 한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투자 운용역이 이런 얘기를 했다. “이제 전통산업에서 투자처를 찾긴 어렵다. 영업 이익에만 목멜게 아니라 뻔히 성장이 보이는 기술기업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헌데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어 내부 의사결정자도, 나아가 출자자를 설득기도 쉽지 않다. 이제는 VC의 가치평가법도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의 전설로 불리는 마이클 모리츠 세쿼이아캐피탈 회장. 그가 1999년 1,250만달러(약 140억원)를 투자한 구글은 현재 시가총액이 5,469억달러(약 623조원)로 성장해있다. 국내에서도 1호 유니콘인 쿠팡을 비롯해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게 팔리면서 투자금을 회수했다), 토스, 야놀자, 크래프톤, 마켓컬리 등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미국 동부 투자업계를 블랙스톤이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PEF가 다표한다면 서부 투자업계엔 실리콘밸리를 일으켜세운 VC 세쿼이아캐피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PEF는 미국 동부의 투자은행(IB)에서 파생한 투자기법이다. 주로 동부에 위치한 굴뚝산업, 그러니까 유형자산이 있고 현금흐름이 좋은 제조기업에 투자해 차익을 얻는다. PEF가 미국 동부의 제조기업을 지탱하고 있는 주체라면, VC는 구글이나 유튜브, 테슬라 등 실리콘밸리의 ‘IT공룡’을 키워낸 주역이다. 최근엔 이들을 구분했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거품’의 시대일까. 돈이 넘쳐나는 게 문제인지, 아니면 실제로 과거의 방법론으로 재단할 수 없는 기업들이 등장하는 시대적 변화인지는 아직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이상 징후가 곳곳에 있다는 점. SK바이오팜이나 카카오게임즈, 빅히트 등 공모주 청약 광풍이 몰아쳤던 기업의 최근 주가는 공모가 대비 반 토막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전 재산을 던졌다 낭패를 본 이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당신이라고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친절하지 못한 결론이지만, 결국 거품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당신이 똑똑해지는 수 말곤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