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이던 양휘모는 이렇게 썼다.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어떤 태평함과 담담함이 양휘모의 문장에서 느껴진다. 엄마에게 혼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는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해 알고 있는 듯하다. 낮에는 싸웠던 우리지만, 밤이 오면 화해하게 될 거라고. 왜냐하면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 또한 엄마를 좋아하니까. 사랑의 확신 때문에 그는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도 지어 부를 수 있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이라는 가사를 쓰는 건 그가 지금의 속상함에 매몰되지 않고 앞날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2020년 문학동네 펴냄)
매일 한 편의 수필을 독자와 직거래하는 ‘일간 이슬아’ 발행인 이슬아 작가는 글쓰기 교사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쓰기 싫어 콧물을 훌쩍거리다가도 결국 자기만의 찬란한 문장을 완성해낸다. “자다가 밝은 곳으로 가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온다. 언니랑 동생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꼭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각진 원고지 칸을 풀싹처럼 뚫고 나오는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손글씨에, 그리움과 불안과 애틋함과 희망이 교차한다.
어른들은 어차피 헤어질 거라고, 어차피 남남일 뿐이라고,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라고 체념하기를 좋아한다. 가래침을 뱉듯 뇌까리는 어른들의 ‘어차피’와 달리 열세 살 양휘모는 휘파람처럼 ‘어차피 화해할 인생’이라고 노래한다. 밤이 오면 우리는 끝내 화해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요즘 나는 양휘모의 노래 ‘어차피 화해할 인생’에 내 식대로 음을 붙여 흥얼거려본다. 함부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손쉽게 닫아걸었던 내 안의 문들을 열어본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