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8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에 따라 야당은 공수처장 후보에 대한 거부(비토)권이 무력화하면서 여당의 입맛에 따라 공수처장 후보 선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열린 법사위의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법사위는 안건조정위원회에 오른 공수처법 개정안을 1시간여 만에 마무리 지었다. 최대 90일까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과 달리 여당은 불과 1시간여 만에 모든 논란을 무시한 채 강행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이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은 법사위 회의실 앞에서 진을 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공수처법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법사위 회의실에서 “전체 다 들어와, 들어와”하는 고성이 터졌다. 안건조정위가 끝난 지 30분 만에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전체 회의를 열고 공수처법을 상정하면서다. 당초 전체 회의 일정은 낙태죄와 관련한 법안에 대한 공청회였지만 윤 위원장이 안건을 변경해 공수처법을 기습으로 올렸다. 농성을 벌이던 국민의힘 의원 수십 명은 안으로 진입했고 회의장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뒤엉켰다. 주호영 원내 대표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이게 말이 되느냐”며 “자기(민주당)들이 법을 만들어놓고 아직 조정이 안 됐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윤 위원장은 “지금 토론을 진행할 수가 없다. 이 법안에 찬성하시는 의원님들은 기립해달라”며 공수처법에 대한 의사 진행을 강행했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11명과 비례 정당인 열린민주당의 최강욱 의원이 기립하며 찬성 의사를 밝혔다. 윤 위원장은 주 원내 대표의 제지로 오른손에 쥔 의사봉을 떨어뜨리자 “왜 이러세요”라며 밀친 뒤 왼손으로 의사봉을 잡아 책상에 3번 내리쳤다. 법사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의결을 위해 소요된 시간은 7분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법사위원인 장제원 의원은 퇴장하며 “오늘부터 법사위는 없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법을 마음대로 바꾸라”고 일갈했다. 김도읍 의원은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모두 명패를 떼고 반납했다. 공산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법사위원인 조수진 의원은 회의장에서 퇴장한 뒤 “이런 정당이 민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 더불어독재당이고 유신 정권과 똑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법사위 문턱을 넘은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 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찬성’ 기준을 ‘의결정족수의 3분의 2 이상’으로 완화하고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을 현행 변호사 10년에서 7년으로 낮추는 김용민 의원의 안이다.
이 법이 9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공수처장은 야당 추천위원(2명)이 반대해도 여당이 지명한 후보추천위원(2인)과 대한변협회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등 5인이 찬성하면 후보 2인을 추천할 수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1인을 지명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 의사 진행이라고 항변했다. 백혜련 의원도 안건조정위가 끝난 뒤 “의결을 둔 다툼은 없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윤 위원장도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 안건을 의결했다는 입장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법안이 법사위를 넘자 “개혁의 과업이라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럽지만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기꺼이 그 일을 저는 하겠다”며 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본회의에서 여야가 공수처법 개정안 등을 처리할 경우 법안 마련과 심사, 상정, 안건 조정, 법안 통과 등 법안 심사와 의결을 위한 모든 과정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기록되는 것이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수(空輸)부대 작전같이 삼권분립을 유린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국민의힘은 9일 본회의가 열리면 공수처법 등에 대해 전원위원회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등으로 응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원위원회는 국회법 제63조에 따른 것으로 의원 전원이 참여해 법안을 심사할 수 있다. 대상은 정부조직법·조세 또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안에 대해 본회의 상정 전에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국회의장이 위원장을 지명해 구성할 수 있다. 필리버스터도 진행해 입법의 부당성을 알린다는 방침이다.
다만 전원위원회와 필리버스터가 법안 처리를 지연시킬 수 있지만 통과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전원위원회는 국회의장이 위원장을 국회부의장으로 지명한다. 국회부의장은 민주당 소속 김상희 부의장 1인 뿐이다. 필리버스터도 본회의 회기가 끝나거나 재적의원 3분의 1이상 종결동의서에 찬성하면 24시간 후에 무기명투표가 진행되고 5분의 3(180명) 이상 찬성하면 종료된다. 민주당(174석)과 열린민주당(3석), 친여 무소속 의원(4석)은 181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