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 19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김기덕 감독은 영광과 논란, 추문이 따라다닌 영화인이었다. 영화와 관련한 정규 교육을 받거나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케이스도 아니었다. 서른 둘이라는 나이에 ‘퐁네프의 여인들(1991, 감독 레오 까락스)’, ‘양들의 침묵(1991, 감독 조나단 드미)’ 등의 영화를 본 후 영화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악어(1996)였다.
영화는 충격적이었다. 자살, 강간, 폭력, 앵벌이 둥 극단적인 내용을 영화 내내 풀어내면서 평단은 물론 영화 관객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김 감독이 내놓은 작품마다 따라 붙었던 여성 비하와 폭력 미화라는 비난이 데뷔작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김 감독의 작품이 논란으로 점철됐던 것과 달리 해외 영화계는 김 감독의 영화들을 반겼다. ‘파란 대문’(1998)이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초청 됐고, ‘섬’(2000)은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또 미국 선댄스영화제는 섬을 월드시네마 상 수상작으로 호명했다. 2001년에도 김 감독은 베를린영화제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다. 악어의 주연이었던 배우 조재현이 출연한 ‘나쁜 남자’가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2003년에는 이전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동시에 받는 등 ‘김기덕표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일반 관객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김 감독은 해외 유수 영화제의 단골이었고, 각종 영화제가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네치아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아리랑’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마침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 작품상)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배우 조민수와 이정진이 출연한 피에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 구원 가능성에 대한 물음표를 관객에 던졌다. 김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해 은관문화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인생은 2017년부터 그의 인생은 급격히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2017년 ‘미투’ 운동이 그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곪아 있던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고, 김 감독의 이름도 회자 되기 시작했다. 사전 협의 되지 않은 과도한 노출 및 폭력적 장면 촬영을 현장에서 요구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폭언과 성폭행까지 했다는 의혹이 영화계 안팎에서 흘러 나왔다. 일각에서는 김 감독 영화 출연 후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춘 여배우들 사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결국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으로 갔고, PD 수첩은 ‘거장의 민낯’이란 제목으로 제작, 방송했다. 김 감독은 사실과 다르다며 즉각 반발했고, 법원에 방송 금지 신청까지 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무고 소송과 손해배송 소송에서도 패소했지만 지난 11월 항소를 결정했다.
국내 소송 중 거처는 해외로 옮겼다. 외신에 따르면 김 감독은 라트비아에 저택을 구입 하고, 영주권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악화하면서 그는 결국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외신 보도 직후 SNS를 통해 해외 영화 관계자로부터 관련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 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