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과잉처벌 금지·포괄위임 금지·명확성 등 헌법원칙 훼손"

[중대재해처벌법 이것이 문제다]

하청 사망에도 사업주 무조건 징역형...기본권 등 정면 침해

징역 5년 이상 처벌은 미성년자 약취·내란모의 수준 '중형'

'처벌 만능주의'론 산재 못막아...예방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김용근(왼쪽 네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등 경제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 추진 관련, 30개 경제 단체·업종별 협회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경제 단체들은 이날 “헌법과 형법을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필연적으로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김용근(왼쪽 네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등 경제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입법 추진 관련, 30개 경제 단체·업종별 협회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경제 단체들은 이날 “헌법과 형법을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필연적으로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기업주가 고의로 한 행위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인데도 현장 사망 사고라는 결과에 기업주를 징역형에 처하는 것은 헌법 가치를 위반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더욱이 명확하지 않은 행위를 두고 형사처벌을 규정한 데 대해 헌법상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에다 형법과의 양형 형평성 문제도 불거지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모두 근로자가 사망했을 때 사업주가 최하 2년 이상에서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한선’을 규정하고 있다. 징역형은 인신을 구속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형벌이다. 특히 우리 헌법은 37조 제2항에 ‘과잉 금지의 원칙’을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보다 완화된 다른 수단이나 방법(대안)은 없는지를 모색해 그 제한이 필요 최소한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도급 및 위탁 관계에 있는 하청기업의 근로자가 사망해도 원청의 사업주에게 무조건 책임이 있다고 추정하고 무조건 징역형에 처하게 규정한 것이다. 이는 ‘책임이 있어야 형벌도 있다’는 ‘책임주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9년 법인이 종업원 등의 위반 행위에 대해 선임·감독의 주의를 다했는데도 형벌을 부과한 것은 헌법 위반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명확성의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조영길 법무법인 I&S 대표변호사는 “명확하지 않은 요건으로 형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은 금지와 허용 행위를 미리 알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다. 중대재해법의 경우 사업주에게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한 뒤 사업장에서 원·하청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처벌을 명시했다. 내용과 범위 역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 누구라도 내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상 ‘포괄 위임 금지의 원칙’과도 배치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형법과 중대재해법의 양형 형평성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산 활동을 하는 기업과 경영자를 ‘흉악범’ 수준으로 보고 처벌 규정을 만든 것은 정치권의 기업인에 대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근로자 사망 시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규정했다.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기준으로 보면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미성년자 약취 및 상해, 뺑소니 사망 사고, 내란 모의에 참여한 자 등에 대한 중형의 의미를 갖는다. 정의당이 사망 사고 발생 시 기업주에게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담은 가운데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형법상 범죄는 인질 강도와 방화, 상해치사, 강간 등이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2년 이상 징역형과 유사한 형법상 범죄는 장기 적출 등 목적의 인신매매, 유사 강간 등이다.



형법과 중대재해법의 충돌도 논란으로 불거지고 있다. 업무상 과실·중과실 치사(형법 제268조)는 형벌 기준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인 가운데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의 업무상 과실에 대한 규정도 모호한 상황에서 징역형을 2~5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지면 말 그대로 ‘특별 형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정치권이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해 지나치게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다”며 “여야가 과잉 입법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는 등한시한 채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무조건 경영자 책임이라고 묶어버리는 것은 기업 연좌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처벌 만능주의’가 해법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올해 근로자 사망 시 최대 징역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담은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우리 정치권은 일이 터지면 ‘더 센’ 법을 만들어 그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끝낸다”며 “안전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에 대해 감세와 인센티브 지원 등으로 개선해야지 처벌만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도 “사업주에게 모든 책임을 부여해 처벌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면만 가지고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구경우·안현덕·전희윤기자 bluesquare@sedaily.com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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