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곤경에 처했다. ‘버니 브로스(Bernie Bros·버니의 형제들)’로 불리는 극성 지지자들이 타 후보 진영에 욕설이 담긴 트윗·e메일·문자 폭탄 공세를 퍼붓는 바람에 역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샌더스 측은 “우리 캠프와 무관하다”며 방어에 나섰지만 다른 주자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하는 샌더스의 팬덤에 대한 비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샌더스 의원은 초반 돌풍을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팬덤(fandom)은 광신자를 의미하는 퍼내틱(fanatic)의 ‘팬(fan)’과 영지(dominion)나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덤(-dom)’의 합성어로 특정한 인물·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통상 연예·스포츠계의 팬들을 말하는데 가수 조용필의 오빠 부대, 방탄소년단의 아미 등을 꼽을 수 있다. 팬덤이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팬덤 문화라는 말이 탄생했다. 팬덤 문화는 스타를 응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타와 일체화하면서 팬덤 간 집단 충돌 등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 팬덤이 정치화하면서 특정 정치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이른바 ‘~빠’가 등장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원들은 각각 ‘노빠’ ‘박빠’ 등으로 불렸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추종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문파(文派)’ 또는 ‘문빠’라고 부른다. 팬덤에는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맹신적 팬덤 정치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지난 6일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은 팬덤 정치가 낳은 비극이다. 지지층의 맹목적 추종과 이를 악용한 정치 지도자의 몽니가 국론 분열과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했다. 전 세계에 생중계된 미 의사당의 처참한 풍경은 배타적 패거리 정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올해 4월 보선,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우리 정치권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