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가 21일 정부와 노동자 단체와 함께 택배 분류 작업을 택배 회사 책임으로 명시하는데 합의했지만 이에 수반되는 인건비와 자동화 설비 구축 등에 출혈이 클 수밖에 없어 결국 택배비 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택배 기사들의 총파업과 설 물류 대란 등을 막기 위해 고개를 숙이다보니 재원 대책 등 회사의 재무 상황과 관계없이 노사안에 성급하게 합의했다는 비판적인 분석도 제기된다.
이날 택배업계는 노사 합의 후 지난해 발표한 과로사 방지 대책 이행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CJ대한통운은 4,000명의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약속했다. 이미 현장에 3,000명 정도가 나가있지만 이날 합의로 나머지 인력도 이른 시일 내 확충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내달 1일까지 1,000명 인력 투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롯데글로벌로지스 관계자는 "현재 500명이 있으나 이번 합의에 따라 일정을 앞당겨 다음주 300명을 증원하고 내달 1일까지 모두 1천명으로 늘려 설 명절 물량 증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진 관계자도 "택배기사의 근로 환경이 개선되도록 노력 중"이라며 "지난해 발표한 과로 방지 대책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택배업계가 '로우 키(Law key)' 전략을 취하며 노사 합의안 이행을 약속하고 있지만 택배업계 내부에서는 이날 합의를 사실상 여론전에 밀린 불가피한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다. 총 파업을 막기 위해 득 없이 내주기만 했기 때문이다. 한 택배 업계 관계자는 "택배 기사가 불가피하게 분류 작업을 하게 되면 사측은 분류인력을 투입하는 비용보다 높은 시급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시급과 같은 기업과 노동자가 결정할 사안도 이날 합의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택배 업계가 향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결국 비용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합의문에 분류 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 계획을 수립해야 된다고 명시된 것 역시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또 다른 택배 업계 관계자는 "택배 업체마다 상황이 다르고 재무 구조도 다르다"며 "자동화 설비 구축 등 회사의 상황에 따라 추진이 불가능 한 영역에까지 합의문에 담겨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국내 택배 업체 중 자동화 설비가 도입된 곳은 사실상 CJ대한통운 한 곳이다.
결국 택배비 인상 논의가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합의에 따른 업체들의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졌다"며 "택배비 인상 논의가 서둘러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