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지시로 이대호 자유계약선수(FA)와 롯데 자이언츠 간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양측 간 입장 차로 계약 성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던 상황이었다.
롯데는 이대호와 우승 옵션 2억원을 포함한 2년 최대 26억원에 합의했다고 29일 발표했다.
그간 롯데와 이대호 선수는 쉽사리 계약서에 합의를 하지 못했다. 2019년 9월 부임한 성민규 단장은 FA 선수 영입에 재원을 쏟아붓기 보다는 유망주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 구단이 신예 육성으로 방향을 틀며 2019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받은 손승락, 고효준, 전준우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 체결을 하기 어려워졌다.
손승락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FA 미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은 고효준은 다음 해 3월에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에 어려움을 겪은 전준우는 에이전트와 결별하고 스스로 구단과 협상에 나서 예상보다 낮은 4년 최대 34억 원이라는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올해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롯데는 이대호와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대호는 한 인터뷰에서 구단이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후 장기간 롯데와 이대호 간 갈등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그룹이 갑자기 개입했다. 협상은 단칼에 풀렸다. 좋은 계약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은 이대호는 우승 옵션은 지역 불우이웃에게 전액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롯데그룹은 구단이 재정난으로 최근 금융권에서 50억원을 대출할 때도 지켜만봤다. 이대호의 FA 협상이 해를 넘기고 스프링캠프를 눈앞에 둔 시점까지 지지부진하게 이어질 때도 꿈쩍 않던 롯데그룹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 26일 들려온 신세계그룹의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인수 소식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당시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신세계와 롯데의 유통 라이벌 구도가 야구판으로 확장됐다며 ‘유통 더비’에 초점을 맞췄다. 롯데그룹 측에서는 매출액에서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신세계 그룹을 라이벌로 표현한 것에 대해 상당히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와 동급으로 거론되는 것도 내키지 않는데, 불과 몇 억 원 때문에 이대호와의 협상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롯데 구단은 이대호와의 계약 이면에 그룹의 결단과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롯데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님이 야구단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롯데 그룹 측에선 이대호와의 통 큰 계약을 통해 ‘짠돌이’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 유통 라이벌 신세계의 등장이 자극제가 된 측면도 적잖아 보인다. 신세계는 장기적으로 돔구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전력 보강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구를 접목한 마케팅 전략도 구사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유통업 기반인 롯데 그룹으로서는 적잖게 신경 쓰이는 상대가 등장한 셈이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