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저출산 대처법

임석훈 논설위원

인구위기 고민 없이 과거정책 반복

막대한 예산에도 출산율 되레 하락

AI확산 등 노동시장 구조변화 감안

중장기 인구 계획·전략 다시 짜야





얼마 전 휴가 때 고향에 내려가 수년간 못 봤던 조카를 만났다. 그 녀석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서울 노량진 학원가 등에서 몇 년을 고생한 끝에 1년 전 합격했다.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넘은 조카에게 ‘평생 직장을 구했으니 이제 결혼하는 일만 남았구나’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결혼 안 할 수도 있어요. 아직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고 집 장만도 어려운데 혼자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요.”

젊은 세대의 결혼·자녀관이 어떤지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조카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실감이 났다. 실제로 저출산 쇼크가 현실로 다가왔다. 1인 가구 급증과 세계 최저 출산율이 그것을 말해준다. 지난해 연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906만여 가구로 전체의 39%에 달한다. 10가구 중 4가구꼴이다. 2016년 35% 수준이었는데 매년 20만~30만 명씩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껑충 뛰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18.2%로 가장 많고 30대도 16.8%다. 50대와 60대는 각각 16.3%, 15.2%로 고령화에 따른 1인 가구보다 젊은 층의 미혼 1인 가구 비중이 높다. 미혼 1인 가구 증가는 출생아 감소로 이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사상 최저인 0.84명. 출생아 수가 27만여 명으로 사상 처음 3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다. 인구 현상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인데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산율 하락은 학령 인구 감소로 이어져 최근 대구대학교 총장이 올해 입시에서 입학 정원을 못 채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일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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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겠다며 지난 3년간(2018~2020년) 매년 26조~37조 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되레 출산율은 하락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고민 없이 인구 정책을 설계해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구 위기에 대한 절박함과 함께 과거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종합 패키지를 만들라”고 지시했지만 1년 이상이 지난 이달 9일에야 법무부가 1인 가구 지원을 위한 법·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출산 장려금 등 과거 정책을 답습하면서 돈은 돈대로 쓰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저출산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1위 인구 대국인 중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아이를 낳지 않고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출산율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2019년 출산율은 1.47명으로 1949년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적절한 출산율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중국은 1978년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1가구 1자녀 정책’ 을 시행했으나 2016년 이를 폐지했다.현재 중국에서는 자녀를 2명 가질 수 있지만 가족계획법에 따라 세 자녀 이상에 대해서는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 10월 열리는 6중 전회에서 폐지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령화가 빨라지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급속히 줄어들면 사회·경제적 활력이 저하될 수 있다. 중국이 산아 제한 정책 폐지를 꺼내려는 이유다. 경제 활력 유지 등을 위해 인구를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한 고민은 당연히 필요하다. 저출산의 원인은 주택·교육 등 다양한 문제와 얽혀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렇더라도 정책 초점을 인구 늘리기에만 맞추는 것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맞게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자동화 확산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점 등 노동 시장 구조 변화를 감안한 중장기적 인구 계획과 전략을 새로 짜야 할 시점이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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