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취임 74일 만에 사실상 경질한 가운데 성난 민심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특별검사를 제안한 것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선거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변 장관 사의도 전형적인 ‘꼬리 자리기’로 비치는 까닭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변 장관을 경질하면서도 “변 장관 주도의 공공 주도형 공급 대책의 입법 작업까지는 마무리할 것”을 지시한 것은 민심 수습의 방향조차 잡지 못한 문 대통령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LH 사태에 대한 정부 합동조사단 1차 조사가 수박 겉 핥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변 장관 사퇴만으로 민심을 다잡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성난 민심의 방향이 변 장관 경질은 물론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 쪽으로 모아지고 있지만 장관 경질만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여 오히려 부담을 키울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은 이날 변 장관 사퇴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과와 검찰 수사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아울러 박 후보가 ‘LH 특검’을 제안한 것에 대해서도 “시간 끌기”로 규정하고 “검찰 수사부터 하자”고 되받았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멀쩡한 수사권을 가진 검찰의 손발을 묶어놓고, 진작에 일할 수 있는 상황과 시기는 다 놓쳐놓고 뒤늦게 특검을 하자고 한다”며 “특검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동안 아마 중요한 증거들은 다 인멸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도 “특검 건의가 단순히 선거를 위한 주장이라면 그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특검에 앞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특검 출범에는 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4·7 보궐선거 이후로 LH 사태를 미루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주며 검찰 수사 배제 기조를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1차 조사 결과는 시작일 뿐이라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며 “국가수사본부가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 했다”고 전했다. 야당이 요구하는 ‘검찰 등판론’은 물론 여당의 ‘특검’에도 거리를 둔 입장인 셈이다.
속도감 있는 검찰 수사를 놔두고 장관 경질마저 실기한 상황에서 여당의 LH 사태 해결책은 ‘묻지 마식’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당장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특검에 이어 국정조사까지 조율되지 않은 주장들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여권이 변 장관 사퇴에 이어 앞으로 특검에 국정조사까지, 위기를 모면하려는 시도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검찰 수사와 변 장관 사퇴는 LH 사태 해결의 첫 단추인데도 검찰 수사는 끝까지 배제하고, 변 장관 역시 바로 직을 내려놓는 것도 아닌 억지스러운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며 “1차 조사 결과에 민심이 더욱 악화하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변 장관의 사의 표명으로 2·4 대책 등 정부의 공공 주도 공급 대책도 동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문 대통령이 2·4 대책에 대한 기초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여지를 남기기는 했지만 사실상 공공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은 어려울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변 장관 후임으로 누가 오더라도 당분간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동력을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변 장관의 자진 사퇴는 정부가 스스로 실책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사업 추진에 앞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급선무다. 당장 오는 4월에 예정된 2차 신규 택지 발표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존 3기 신도시와 관련한 토지 보상 작업과 사전 청약 등의 계획도 일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변 장관이 당분간 직을 지키든, 곧바로 새로운 후임 장관이 오든 현행 공공 개발 방식의 구조적 문제 개선이 이뤄진 뒤에야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변 장관이 사퇴를 하더라도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면 정책 추진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추락한 공공에 대한 신뢰 탓에 계획에 차질은 불가피하다. 신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