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고용 충격으로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중된 것은 물론 대학을 나와 단순 노무직 같은 고학력이 불필요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 고용 문제가 양(量)뿐 아니라 질(質)적으로도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기에 높은 실업률을 경험한 세대일수록 중장년이 돼서도 고용 상태나 임금 수준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이력현상(hysteresis)’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노동시장 제도 개선 등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게 됐다.
15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고용 상황 악화가 신규 대졸자에 미치는 장단기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12월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5.3% 감소하면서 비청년층(2.4%) 대비 고용 충격 여파가 크게 나타났다. 같은 기간 청년층 가운데 학업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쉬었음’ 응답자도 24% 이상 늘었다. 한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불확실성 증대가 기업의 신규 채용을 줄였고 이는 청년층의 임금이나 취업의 질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2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서도 고용보험 가입자를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29세 이하(전년 동기 대비 -9,000명)와 30대(-4만 8,000명)에서만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기업의 신규 채용이 위축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반면 60세 이상 고용보험 가입자는 전년 동기 대비 15만 9,000명 늘었다. 정부 일자리 사업이 60세 이상 고령층에 집중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학 졸업 후 제때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은 하향 취업에 내몰렸다. 하향 취업은 취업자의 학력이 일자리가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은 경우를 말하는데 인적 자본의 활용이 비효율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서비스·판매직, 단순 노무직 등 대졸 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자리에 종사하는 대졸 하향 취업자 비율은 10% 이상 증가했다. 주당 36시간 미만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문제는 이 같은 하향 취업을 할 경우 단기적으로 임금 하락 등 노동 조건이 악화될 뿐 아니라 낙인 효과가 발생하면서 향후 경력 개발에도 발목이 잡힐 수 있다. 과거 연구에 따르면 대졸자가 하향 취업할 경우 적정 취업 대비 임금 손실은 36%에 이르고 하향 취업자 5명 중 4명은 2년이 지나도록 하향 취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경향은 경기 침체기가 이전에 닥쳤을 때도 관찰된 현상이다. 한국노동패널(1998~2019년) 자료 분석 결과 실업률이 큰 폭 상승했던 외환위기(1998~1999년)와 금융위기(2009~2010년) 당시 신규 대졸자는 졸업 당시뿐 아니라 3~4년 차까지 임금 손실이 발생했다. 졸업 연도 실업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1~2년 차 연간 임금은 4.3%, 3~4년 차에는 2.3% 떨어졌다. 경제위기에 취업을 하는 청년들은 하향 취업이 늘어날 뿐 아니라 기술 축적이나 승진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특히 상위 30개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4년제 대학이나 2년제 대학 등을 졸업한 경우 임금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별로 살펴봐도 이공계보다는 인문계 전공자들의 임금 손실 폭이 더 컸다. 의학이나 사범 계열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졸업 당시 노동시장에 부정적 충격이 발생한 경우 대기업 취업도 어려워진다. 졸업 연도 실업률이 1%포인트 오르면 대기업 취업 가능성은 1~2년 차에 3.5%포인트, 3~4년 차에 2.3%포인트 낮아졌다.
노동시장이 경직될수록 이력현상은 더 크게 나타난다. 오삼일 한은 고용분석팀 차장은 “기업의 청년 채용 유인을 높이기 위해 세제 혜택을 고려하는 한편 근본적으로 직업 간, 직업 내 원활한 노동이동을 유도할 수 있는 노동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