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여행 업계 500만 원, 법인 택시 기사 100만 원 등으로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확대하고 농어업 분야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정부 안보다 증액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재난지원금 등 주요 정책 결정 이슈에서 번번이 당에 끌려갔던 정부가 이번에도 되풀이하게 되면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21일 국회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2~23일 소위원회를 열어 본격적인 증·감액 심사를 논의한다.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안이 의결되면 정부는 이달 말부터 집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가 발표한 100만~500만 원의 자영업자 지원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집합 금지 연장 업체 지원 확대, 영업 제한 매출 미감소 사업체 지원 신설, 경영 위기 일반 업종의 지원 확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 여행업·공연업·전시업·이벤트업 등 문화관광 분야의 피해 업체 지원을 두텁게 하고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화훼 농가와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납품 농가 등 농업 분야를 추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은 15조 원 규모이지만 앞선 상임위 심사에서 증액 규모는 3조 원이 넘는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농민을 4차 지원금 대상에 추가하는 것이) 여야가 공감대가 있다면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지시하겠다”고 말한 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어임업인 가구당 10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포함해 1조 6,297억 원을 늘렸다. 다만 홍남기 부총리는 “농어민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지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까지 추경은 대부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 안보다 삭감했던 관례를 갖고 있다. 헌법 제57조에 따라 국회가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나라 곳간 사정을 고려한 측면도 작용했다. 2019년 5조 8,000억 원으로 국회에서 확정한 미세먼지 추경은 정부가 제출한 규모보다 8,568억 원 감액됐고 2020년 1차 추경(-43억 원), 3차 추경(-2,000억 원), 4차 추경(-274억 원) 모두 정부 제출 안보다 적은 금액으로 국회에서 처리했다. 예외적으로 지난해 2차 추경 때는 규모가 커졌는데 소득 하위 70%에 주기로 했던 1차 재난지원금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 불가피한 결과였다.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증액을 밀어붙이면 정부의 ‘증액권’이 무용지물되는 경향이 강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여당은 지난해 말 올해 558조 원의 본예산을 편성할 때도 3차 지원금을 포함시키면서 11년 만에 증액 예산을 만들기도 했다. 야당인 국민의 힘은 2조 1,000억 원 규모의 단기 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지만 고용 쇼크 상황에다 아직 1분기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지출 구조 조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3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긴급재난지원금을 하위 50%에만 지급하자던 홍 부총리에 대해 “해임 건의를 검토하겠다”고 압박했고 이후 하위 70%에서 전 국민으로 대상이 계속 늘어났다. 홍 부총리는 지금까지 10여 차례 여당과 정책 충돌을 겪으면서 그 중 유일하게 4차 지원금 선별 지급만 그의 목소리대로 결정됐다. 그렇지만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두텁게 지원한다는 원칙으로 인해 지원 대상과 금액 모두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적자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지출을 늘리면 10~20년 후에 국가 채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며 “증액이 된다면 나랏빚을 더 찍어야 해 재정 건전성도 빠르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