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인텔은 정말 파운드리에서 희망을 보고 있는 걸까

[이상훈의 재미있는 반도체 이야기]인텔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예상대로 지난 23일(현지 시간) 인텔의 펫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역대급 발표를 했다. 많은 내용이 담겨있지만 핵심만 발라내면 딱 3가지다.



첫 번째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 달러(한화로 약 23조원) 가량을 투입해서 새로운 팹을 만들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핵심 칩은 인텔이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를 위해 7나노 CPU로 2023년 출시 예정인 미티어레이크의 설계 설계자산(IP) 검증을 올 2분기까지 완료한다는 점도 공개했다. 특히 과거 삼성이나 글로벌파운드리와 공정개발을 함께 했던 IBM과 손을 잡아 미세공정 개발에 절대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독점 IP인 X86 CPU IP를 공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파운드리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폐쇄적으로 운영하던 자신의 IP를 오픈해 고객인 팹리스가 쉽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이는 파운드리 사업을 위해 인텔을 유연화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외신에서는 ‘인텔이 180도 바뀌었다’는 표현이 나왔다. 자신의 칩만 만들던 것에서 파운드리 사업까지 하겠다고 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인텔만을 위해 폐쇄적으로 운영해왔던 자신의 독점 IP를 외부에 공개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강수를 뒀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과연 잘 될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서비스업종이다. 팹리스와의 교감과 피드백이 중요하고 각종 IP보유 업체와 팹리스, 설계 툴 업체인 EDA 업체 등의 사이에서 파운드리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갑 중에 갑’ 체질이 박혀 있는 인텔이 ‘이를 잘 해낼까’ 라는 시장의 회의가 적지 않다.

①염불보단 잿밥?…인텔은 정말 파운드리에서 희망을 보고 있는 걸까

인텔은 그간 개발 중심, 공급자 중심 업체로 반도체 시장에서 군림해왔다. 그런데 파운드리는 서비스업종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텔의 이번 발표가 새로울 게 없는 일종의 ‘꼼수’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인텔의 조직 문화가 서비스 업종인 파운드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당연히 성공 가능성도 낮게 본다. 예를 들어 고객이 필요로 하는 IP에 대한 고민 같은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인텔이 이런 점에 취약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왜 인텔이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했을까. 여기서 정부의 입김과 인텔의 전략적 선택이 자리한다. 자국 안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만들고 말겠다는 미국 정부의 압박과 정부 보조금을 타내려는 인텔의 의도가 교집합처럼 만나 파운드리 진출 선언이 이뤄졌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칩 수급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TSMC, 삼성전자에만 읍소하는데 따른 갑갑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텔에 제조 공장을 따로 만들어서 다른 회사의 칩도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을 수 있다.

인텔 입장도 신규 팹이 필요하다. 파운드리를 한다고 해야 정부 지원을 유인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거다. 기존대로 자신의 칩만 만들어서는 칩 수급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에 정부 지원도 언감생심이다.

사실 인텔이 23조원을 들여서 만든다는 팹도 자신의 7나노 이하 칩을 만드려면 설비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외부 칩을 만드는 데 할당되는 팹 공간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 인텔은 앞으로 미국, 유럽에 신규 팹을 만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텔의 선택에 회의적인 부류들은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그 자체보다 정부 지원에 보다 집착했을 거란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어찌 됐든 미국 정부와 인텔이 이심전심이었을 거란 얘기다.


②최고의 공정 기술력 인텔, 하지만 파운드리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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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그간 자신의 칩을 직접 설계해서 자신의 팹에서 만들어왔다. X86 IP를 이용해서 말이다. 앞으로 인텔이 다른 팹리스의 칩도 만들겠다는 얘기는 자신의 IP뿐만 아니라 ARM IP 등 다른 회사의 IP로도 설계된 각종 칩을 만든다는 얘기다. 인텔 입장에서는 자신의 팹에 ARM IP 같은 것도 심어 놓아야 한다. 인텔을 뺀 대다수 팹리스가 쓰는 IP가 바로 ARM IP 이기 때문에 인텔도 이런 것을 자기 공정에서 갖춰야 한다. 사실 IP는 소프트웨어로 돼 있다. 그런데 이 IP를 사용하는 사람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로 구현된 것을 쓰게 된다. 흡사 블록처럼 말이다. 인텔은 자신의 팹 안에 공정에서 이런 하드웨어로 구현된 각종 IP를 테스트해서 안정화가 돼야 이 IP를 레고블록처럼 쓸 수 있다. 팹 안에서 테스트하고 만들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데 근 2년 가량이 걸린다. 팹의 외형을 짓고 장비를 들여와 세팅하고 이런 각종 IP를 테스트해서 공정 안에 갖춰놓기까지 4~5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인텔의 발표를 보면 기존 팹을 활용해서 파운드리로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사실 신규 팹이나 기존 팹이나 장비 구성 등은 똑같다. 그런데 기존의 것은 이전대로 인텔 칩을 만드는데 쓴다고 가정하면 결국 미국, 유럽 등에 새롭게 라인을 만들어 장비 입고, IP 새로 심기 등을 통해 세팅을 마무리하기까지 빨라야 2025년은 돼야 공장 가동이 가능할 것이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선언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텔은 설계 툴인 EDA툴이나 업계 표준 프로세서 개발키트(PDK) 등도 더 표준화해야 한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한다는 얘기는 모든 것을 ‘자신만의 것’에서 ‘범용화된 툴’로 업그레이드한다는 얘기를 내포한다. 자신만의 칩을 폐쇄적으로 만들다가 다른 회사 칩을 만든다는 것은 이처럼 복잡하고 성가신 작업을 동반하는 것이다.

파운드리로 성공하려면 R&D 비용 증가, 툴 비용 증가, 운영 비용 상승 등 반도체 제조 규모를 자체 제품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인 1명의 월급이 대만인 5~6명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점도 파운드리 사업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③X86 CPU IP 공개가 팹리스에 매력적일까

인텔의 X86 CPU IP 공개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인텔로서는 주도권 확보, 주도권 재탈환이 목적일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인텔의 반도체 생태계를 확산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당장 애플·퀄컴 등이 ARM 계열 CPU로 시장을 잠식해 오자 이번에 자신의 IP를 공개해서 팹리스들로 하여금 직접 프로세서를 설계하려면 X86 CPU IP로 설계하라고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간 X86 CPU IP는 인텔만 써왔다. 폐쇄적으로 운용해온 만큼 이걸 공개한다고 해서 팹리스들이 얼마나 쓸까. ARM IP는 원래부터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었던 IP다.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X86 IP는 다르다. 인텔만을 위해 만든 IP라 다른 업체가 사용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IP를 오픈하게 되면 인텔이 팹리스와 의사소통할 인원을 많이 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두 비용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인텔 내부에서도 핵심 인재일수록 개발 파트를 더 선호할 것이다. 서비스 쪽인 파운드리보다는 말이다. 겔싱어는 구글, 시스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고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과 같이 개발해서 칩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본다. 앞으로 인텔이 어떻게 파운드리를 운용하느냐에 성패가 달렸을 것이다. 쉽지 않을 거란 점은 분명하다.

다만 파운드리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고 인텔도 예전의 인텔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이다. 핀치에 몰려 있는 만큼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 임하는 태도가 이전에 실패했던 지난 2010년대 중후반 당시보다 적극적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④미세공정 성공이 당면과제…인텔의 자원배분을 주목해야

인텔은 파운드리를 통해 저가 칩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것도 발표를 통해 드러냈다. 첨단 칩만 만들겠다고 했다. 다르게 말하면 흔히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8인치 팹용 칩은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인텔은 미국 군수용 칩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구식 라인을 상당 기간 유지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인텔의 기본 입장은 명확하다. 앞으로 고부가가치 칩 위주로 생산을 할 것이고 이는 파운드리 사업도 마찬가지다. 삼성, TSMC 등에 맡기는 칩은 가급적 저부가칩이라는뜻이다.

그럼 이 지점에서 생각해보자. 인텔에 칩을 맡길 곳은 고부가 칩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팹리스는 죄다 미국 업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자일링스 같은 곳들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텔의 경쟁자다. 이런 곳들이 인텔에 쉽게 칩을 맡길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야 인텔이 미국 기업의 칩을 만드는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만은 중국과, 한국은 북한과 얽혀 있다. 불안한 정세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텔이 안전하다.

하지만 이건 유사시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평소에는 삼성, TSMC와 작업하던 업체들이 인텔로 갈아타는 데 따른 메리트는 없다. 더 번거롭기만 할 것이다. 인텔이 삼성 TSMC 고객을 뺏어오려면 수주 단가를 확 낮추는 등의 파격적 조치가 없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인텔은 지금 10나노 수율도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7나노 공정칩도 2023년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인텔의 7나노는 TSMC, 삼성의 5나노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겔싱어는 이번 팹 캐스트를 통해 IBM과 공정 개발에 나설 것임을 강조했다. IBM은 삼성과 글로벌파운드리와도 공정개발을 함께 한 실력파 기업이다. 인텔이 이제는 홀로 공정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R&D 업체에 힘을 빌리겠다는 현실론을 들고 올 만큼 변했다는 게 희망적인 요인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정리하면 미국 팹리스들이 물량을 주고 안주고를 떠나 공정 개발부터 하는 게 순서라는 얘기다.

결국 인텔의 생산 능력과 자원 배분이 중요하다. 인텔은 이제 내부에서 생산할 칩과 외부 파운드리에 맡길 칩을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텔이 신규 팹을 얼마나 지어야 하는지, 또 한정된 자원을 어느 곳에 어떻게 투입해야 최대 효과를 올릴 수 있는 지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다. 앞으로 인텔의 미세 공정 개발 진척과 성과, 또 어떤 칩을 외주화할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소식이 나와봐야 인텔의 진정한 의도를 더 잘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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