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AI시대, 善에 대한 희망과 믿음 전하고파"

■노벨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출간 인터뷰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로봇 클라라

외로운 소녀와 만나 인간관계 학습

혁신-디스토피아 공존 美 배경삼아

역사 잊은 나라, 미래로 가기 어려워

문화 근원지 韓,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

가즈오 이시구로 ⓒ jeffcottenden.co.uk가즈오 이시구로 ⓒ jeffcottenden.co.uk




“선(善)에 대한 더 많은 희망과 믿음이 있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클라라에게 슬픈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결말이 너무 슬프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클라라와 태양’은 희망, 그리고 세상에는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관한 책입니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7)는 신간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펴냄)’의 한국 출간을 기념해 진행된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클라라와 태양’은 현재로부터 근미래 미국의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외로운 소녀 조시와 인공지능(AI) 로봇 친구 클라라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구상했으나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슬프다’는 20대 딸의 의견을 듣고는 오히려 내용을 더 어둡게 만들어 어른들을 위한 소설로 완성했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대로 ‘클라라와 태양’은 어둡고 쓸쓸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명암의 대비가 명확하다. 태양에 대한 클라라의 선한 믿음이 어둠 속에서 더 환하게 빛난다.

이시구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로봇 클라라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클라라는 거의 백지 상태에서 소설에 들어왔다. 최근에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그녀에겐 아무런 역사가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나 다른 곳에서 생겨난 편견이나 가치관이 거의 없는 캐릭터에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특성을 부여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과거 이시구로의 작품 속 인물들은 주로 자신들의 과거에 짓눌렸고, 스토리도 각 인물들과 그들의 과거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반면 과거가 없는 클라라는 오직 현재 상태에서 학습하고, 학습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리고 이 모든 순수한 학습과 진보 과정은 인간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는 클라라를 화자로 세운 덕분에 “작가로서 기술적 관점, 기계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며 “독자들이 실제로 저를 따라서 세상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차원에서, 마치 지능형 기계의 눈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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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을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설정한 데 대해서는 “미국이 훨씬 젊은 나라, 사회가 불안정하고 늘 변화를 겪는 나라로 느껴졌다”며 “과학과 기술에서 모두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지만 아직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이면서도 스스로 정비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이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을 다루긴 했지만 전작에서 다뤘던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분투하는 개인’은 그가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이시구로는 “지금의 세계를 관찰해 보면 인종 갈등을 비롯해 각 국가들을 괴롭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이는 국가와 사람들이 지난 역사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인종 문제를, 영국은 식민주의를, 일본도 2차 세계 대전 전후에 한 일들에 관한 수많은 역사와 식민지 역사를 심하게 묻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로 이 내용이 제가 관심 있는 주제”라며 “우리 사회, 우리나라를 위한 메모리 뱅크(memory bank·기억 저장소)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데 대한 논평도 이어졌다. 그는 “지난 10~15년 동안 한국은 문화의 근원지로서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졌다”며 “과거에 한국은 삼성과 같은 기술이나 자동차의 생산지로 여겨졌지만, 지금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라고 말했다. 영화계와도 인연이 깊은 이시구로는 또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국 영화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 15년 간 전 세계가 최첨단의 흥미진진한 한국 문화의 등장을 잘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서양인들 대부분이 한국을 현대적이고 젊은 나라로 보는 것 같다”며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고 미래 지향적인 현대 국제 문화로 간주된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이시구로는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제 책이 읽힌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라며 “제 책이 한국의 ‘문화 현장(cultural scene)’의 일부를 이루게 돼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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