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처음 올라갔을 때 짝 선배가 있었다. 1학년 3반 33번이면, 3학년 3반 33번 선배가 내 짝 선배가 돼 1년 동안 학교생활을 도와준다. 좋은 짝 선배를 만나게 되면 학교생활뿐 아니라 공부에 대한 도움도 받아 성적이 올라간다.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고 어느새 중년이 됐지만 여전히 인생이, 삶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짝 선배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일본 작가 도야마 시케히코는 중년의 멘토를 자처하고 <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봤네>를 펴냈다. 당시 그의 나이 92세, 그야말로 중년의 어른이다. 중년보다 2배쯤 더 살아본 저자는 인생을 이모작이라고 표현한다. 이모작은 같은 경지에서 1년에 종류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90살이 넘은 지금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마음이 넘치는 이유를 40대부터 새로운 일을 찾고 도전해온 이모작 인생에서 찾는다. 여기서 작가는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한마디를 내뱉는다. “중년은 인생의 2막이며, 이 2막은 결코 ‘뒤’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따라서 인생 1막과는 다른 더 즐겁고 충실한 2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이모작을 지향한다면 4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40대가 기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필요할 것이다.
- ‘40부터 준비하는 행복한 인생 2막’ 中-
작가는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좋은 나이로 40대를 조언했다. 40대는 정년까지 20여 년 정도 기간이 남아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찾아낼 여유가 충분하다는 게 이유다. 단 주의할 점은 인생 1막 시기의 ‘전문 분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간혹 1막에 지녔던 명함이나 지위를 내려놓지 못하고 어떻게든 끈을 이어 2막을 살아보려 하는데, 이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작가는 두 번째 직업 탐색은 처음의 직업과 다른 방향이 좋다고 조언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회사원이 자신의 가치관과 딱 맞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의 이 말에 따르면 50대의 주제는 두 번째로 심을 씨앗을 결정하는 것이다. 회사원 인생은 어디까지나 인생의 전반전이다. 그 전반전의 종반에 접어들 때쯤에는 후반전의 전략이 이미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 ‘50대, 결단을 내릴 최적의 시기’ 中-
작가는 “고생 없는 인생은 없으며, 고생 없이 노후도 없다”고 말한다. 화려한 인생 2막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더 귀담아들어야겠다. 즐거운 인생 2막을 위해서는 40대에 ‘또 하나의 일’을 발견하고 50대에 조금 더 고생해 인생 1막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무리해 이직하라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50대의 이직은 분명히 커다란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직을 권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정년퇴직 후 즉시 인생 이모작 실행 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는 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집에 가져오는 게 남자의 본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커다란 착각임을 명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일모작 인생은 불쌍하다.
- ‘의리와 인정의 굴레’ 中-
작가는 매일 새벽 만보 걷기를 하고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외출을 한다. 그리고 삼시 세끼를 직접 요리한다. 이 모든 게 몸과 뇌의 건강을 가져다주는 비결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중년 이후의 독서는 양보다 질이며, 알파 독서보다 베타 독서를 해야 한다. 베타 읽기는 난해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표현 형식 또는 내용을 읽는 방식이다. 사전을 찾아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문자가 나열돼 있어 알파 읽기가 불가능할 때 베타 읽기에 도전함으로써 두뇌를 활동시킬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나이, 다채로운 직업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준다. 이게 바로 젊음의 묘약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있어 발생하는 건망증과 망각에 대해서는 하늘의 선물이라고 했다. 망각을 통해서 오히려 개성을 발휘하고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연륜의 기술인 ‘절반주의’를 실천해 일희일비 중 ‘일희’쪽에만 신경을 쓰는 편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지를 결정하는 절반은 자신의 주관이다. 남은 절반은 객관인데, 그 객관은 사실 ‘주위 사람들의 생각’일 경우가 많다. 자신의 관점을 그런 것에 둘 필요는 없다. 주관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 ‘연륜의 기술’ 中 -
/정혜선 기자 doer0125@lifejum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