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다국적 항공사 에어버스가 지난해 9월부터 수소를 연료로 쓰는 항공기 ‘제로E’ 개발에 돌입했다. 에어버스가 계획대로 오는 2035년 상용화에 성공하면 승객 200명 이상을 태우고 1,850㎞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대형 수소 여객기’ 시대가 열리게 된다. 영국 항공 스타트업인 ‘제로에이비아’는 지난 2017년 창업한 신생 업체임에도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6인승 상업용 수소 항공기 시범 비행에 성공했다.
수소 항공기 개발은 수소 ‘영토’가 항공·우주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항공연료’로서 수소는 액체 상태로 영하 253도 ‘초저온’으로 유지돼야 하고 연료 탱크도 일반 항공기보다 4배 이상 커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은 ‘탄소 다(多) 배출’ 항공 산업을 탈바꿈하기 위한 ‘문 샷 싱킹(moonshot thinking·혁신적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승훈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본부장은 “미래에 대비해 탄소 감축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향후 10년간 623조 투자
실제 세계 주요국 대부분이 수소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럽은 이미 2010년대 전후로 수소 생산과 이송·저장·활용을 아우르는 수소 도시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덴마크는 2007년 롤란드섬의 각 가정에 연료전지 모듈을 설치해 수소 공급망을 구축했고 네덜란드는 2019년부터 북부 흐로닝언주에 최초로 수전해 활용 수소 생산이 가능한 그린수소 생산 기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2016년부터 중부 도시 리즈에서 2030년까지 천연가스 기반 에너지 인프라를 100% 수소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수소 중·장기 전략도 속속 수립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향후 10년간 4,700억 유로, 약 623조 원을 수소경제에 쏟아붓겠다는 장기 계획을 지난해 7월 발표했다. EU 회원국 중에서도 수소 산업 발전에 가장 적극적인 독일은 지난해 6월 발표한 ‘국가 수소 전략’에서 총 90억 유로, 약 12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일본과 중국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수소경제 전환을 공식화한 후 2030년까지 수소충전소 900개 건설, 연료전지 발전기 530만 대 공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 굴기’를 천명한 중국은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 대 보급과 더불어 충전소 1,000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수소차에 대한 구매세(10%)를 면제하고 베이징과 상하이·광둥성·다롄을 수소 산업 4대 거점으로 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도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시절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수소 산업 육성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中, 보조금 확대해 ‘수소 굴기’
선진국 기업들도 수소 시장 선점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수소 연료 생산 부문에서는 미국 에어프로덕트앤드케미컬, 프랑스 에어리퀴드, 독일 린데 등 기존의 산업용 가스 제조 업체 3곳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이들 3강에 이어 둥화에너지·산시성에너지 등 중국 업계가 바짝 뒤를 쫓는 형국이다.
특히 중국 기업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등에 업었다. 액화천연가스(LNG) 유통 업체인 중국가스와 중국 3대 석유·가스 채굴 기업인 중국해양석유가 LNG를 활용한 수소 생산과 저장 및 유통을 하는 합작 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생산해 탄소 배출이 말 그대로 ‘제로’인 그린수소 생산 경쟁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주로 아사히엔지니어링·히타치·도시바에너지시스템 등 일본 기업이 우세한 상황이다.
덴마크에서는 친환경 수소 연료 개발을 위해 서로 다른 업종의 6개 기업이 손을 잡았다. 세계 최대 선사인 덴마크 AP몰러머스크, 항공사 SAS, 물류회사 DSV, 풍력발전 기업 오스테드 등이다. 이들은 2023년까지 풍력 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대형 수전해 장치와 3기가와트(GW)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소를 구축하기로 했다.
세계 3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인도 정부 역시 에너지 산업 기업 연합인 ‘인도H2동맹’을 출범시키며 민관 합동으로 수소 산업 육성에 착수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각국이 탄소국경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확대 등 규제 대응을 위해 수소 산업 육성을 시작했으나 이제 수소 수출 확대 등 경제적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