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금 규제 완화 의지를 내비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후퇴 기류가 나오자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직후 민심 이반을 진화할 카드로 부동산 세제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가운데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이어지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민주당의 모호한 행보가 대선 경선이 본격화하는 오는 5월 이후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도층으로 표심을 확대하려는 ‘미래 권력’ 대선 주자와 문재인 대통령과 강한 일체감을 보이고 있는 ‘강성 친문’ 주자 간 강 대 강 충돌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완화책 쏟아내더니 갑작스런 ‘회군’=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23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극소수의 그야말로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만 부과되는 것이 종부세인데 이 종부세 부과 부담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잘못 진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선출돼 재보선 주요 패인으로 종부세 등을 꼽으며 부동산특별위원회 구성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의결한 지 나흘 만에 반기를 든 셈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도 이날 “원칙”을 강조했고 소병훈 의원은 완화책에 대해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부동산 세제 완화 반대론에 합류했다.
민주당의 기류 변화는 지난 19일 의원총회에서 예고된 바 있다. 윤 위원장은 의총에서 “최근 (의원들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분출하고 있다”며 “(의견이 있으면) 부동산특위에 의견을 제출하고 그 안에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당일 비대위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부동산 관련 입법에 대한 평가는 법안 개수가 아닌 정성 평가를 하겠다”며 “부동산 관련 법안은 하나하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유의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의원들의 입법 활동조차 원내지도부가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강성 친문 반발에 당권 주자도 ‘갈팡질팡’=민주당 신임 원내지도부가 완화 기조에서 후퇴한 것에는 결국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부동산특위가 구성된 뒤 당초 대표적인 강성 친문으로 꼽히는 정청래 의원조차 1주택자의 보유세, 2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지방세·소득세법 개정안을 예고했다. 김병욱 의원은 1가구 1주택의 경우 종부세 적용 대상을 공시지가 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이광재 의원 역시 “대한민국 1%에게 매겼던 세금이 종부세”라며 “(과세 기준을) 9억 원에서 대폭 상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까지 “부유세가 중산층에게까지 확장되면 세목의 취지와는 어긋난다”며 완화론에 가세했다.
그러자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탈당하겠다’는 글과 함께 ‘정책의 일관성이 신뢰’라며 민주당을 성토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게시됐다. 이에 당권 주자인 우원식 의원은 “성급한 백가쟁명식 부동산 처방이 또다시 신뢰만 무너뜨린다”며 당심에 호소했다. 다른 당권 주자인 홍영표 의원 측도 종부세 부과 기준과 관련해 12억 원 상향을 언급했다는 보도에 ‘아니다’라는 해명 입장을 밝히며 발빠르게 대응했다. 당권 주자 중 송영길 의원만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결국 민심을 읽지 못해 선거에서 패배했는데 당심을 얻어야 당권을 쥘 수 있는 구조에서 차기 지도부 역시 종부세 완화를 두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지적했다.
◇집토끼·산토끼 딜레마 빠진 여당=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재보선 패배 이후 산토끼를 잡자고 부동산 세금 완화를 주장했지만 집토끼 이탈이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정권 말 집권 여당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결국 대선 경선이 본격화하면 중도층을 잡으려는 이른바 ‘미래 권력’ 진영과 반대로 ‘현재 권력 지킴이’ 역할을 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집토끼와 산토끼를 다 잡는 정치적 셈법이 고려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산토끼를 잡자는 차별화마저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역시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은 전략도 기조도 없는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라며 “강성 지지층 탓에 당권 주자나 대선 주자 모두 생산적인 논쟁이 가로막혀 있다”고 평가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