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반면, 동일인(총수)으로는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 국내 법인이 지정됐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정몽구 회장에 이어 총수로 신규지정됐으며 효성그룹 또한 총수가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바뀌었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 수는 쿠팡, 현대해상 등이 신규지정되며 지난해 대비 7개 늘어난 71개를 기록했으며 소속회사 수는 지난해(2,284개) 대비 328개 증가했다.
공정위는 최근 한달 간 동안 논란이 됐던 쿠팡 동일인 지정 문제와 관련해 한국계 미국인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 국내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쿠팡의 지난해 자산총액은 전년 대비 2조7,000억원 늘어난 5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공정위는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온 점 △현행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동일인관련자 범위나 형사제재 문제 등에 대한 현실적 대처 어려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계열사 범위에 변화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이 같이 판단했다.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위반 논란을 고려한 판단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공정위는 이달 초만 하더라도 “외국인(김범석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전례가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지난 21일 전원회의 긴급 토의 안건으로 관련 사안을 상정하는 등 고심을 거듭한 바 있다. 통상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쿠팡 동일인 지정 사안의 FTA 위반 여부를 검토한 것 또한 공정위 측에 적잖은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 같은 공정위 결정과 관련해 ‘검은머리 외국인 봐주기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2017년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지정을 앞두고 이해진 창업자가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이 의장의 총수 지정 문제를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바 있다.
또 공정거래법이 동일인에 대해 국적 기준을 두고 있지 않고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총수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어 법리 문제도 제기될 전망이다. 미국 법인인 ‘쿠팡 Inc’에 대한 김 의장의 지분율은 76.7%(차등의결권 적용 시)에 달한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연구용역 등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와 확인 및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역대 최대치(71개)의 기업집단을 지정한 가운데 효과적 규제 집행 방안, 동일인관련자 범위의 현실 적합성 등도 함께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영권 승계 등 젊은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동일인 세대교체를 지속 검토할 계획”이라며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및 신산업 출현, ESG라는 신경영 패러다임 등 급변하는 환경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쿠팡,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해상화재보험,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를 대기업집단에 신규지정한 반면 KG는 제외해 대기업집단은 총 71개로 늘게 됐다. 공정위는 또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40개 집단(소속회사 1,742개)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셀트리온, 네이버, 넥슨, 넷마블, 호반건설, SM, DB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된 반면 대우건설은 제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여 자산가치가 급등함에 따라 지정집단이 대폭 확대됐으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약과 IT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이 급성장했다”며 “특히 셀트리온은 자산총액이 8조8,000억원에서 14조9,000억원으로 늘었으며 설립된지 30년이 채 되지 않은 ICT 기업인 카카오(14조2,000억원→19조9,000억원), 네이버(9조5,000억원→13조6,000억원), 넥슨(9조5,000억원→12조 원), 넷마블(8조3,000억원→10조7,000억원)의 자산총액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현대차 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지분 전부에 대한 의결권을 정의선 회장에게 포괄 위임한 점, 정의선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임원변동 및 대규모 투자 등 주요 경영상 변동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동일인을 변경했다. 효성 그룹 또한 조현준 회장이 지주회사 효성의 최다출자자이며 조석래 명예회장이 보유한 효성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조현준에게 포괄 위임한 점 등을 고려해 동일인을 바꿨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