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삼성전자가 20조 원에 달하는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후보지로 텍사스주 오스틴이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또 다른 후보지였던 애리조나주 부지 경매에 삼성전자가 참여하지 않으면서다. 삼성전자의 본격적인 투자 발표가 이뤄지면 한국을 비롯해 대만·미국 등 반도체 강국이 참전하는 글로벌 파운드리 전쟁은 한층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외신에 따르면 미 애리조나주 토지국이 전날 진행한 2개 부지 경매가 지난 4월에 이어 또다시 유찰됐다. 경매에 부쳐진 두 부지는 굿이어와 퀸크리크에 있는 곳으로 삼성전자가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세운다면 이 두 곳을 매입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지난달 22일에 이어 이번 경매에서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다음 달 10일로 경매가 한 차례 더 미뤄진 상태다.
애리조나 부지 선정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어지자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지로 애리조나주는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됐던 오스틴에 대한 투자 가능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오스틴도 협상 과정에서 뚜렷한 진전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미 1997년부터 가동 중인 공장이 있어 부품과 원자재 등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투자와 관련해 여전히 “검토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새 투자지가 어디로 결정되든 향후 글로벌 파운드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대만의 TSMC는 이미 애리조나에 120억 달러(약 13조 5,000억 원)를 투자해 5나노 공장을 더 짓기로 했고 3나노 이하 공장 설립 방안도 검토에 들어갔다. 3년간 총 113조 원의 금액을 쏟아 붓는 등 공격적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인텔도 200억 달러(약 22조 6,000억 원) 투자를 시작으로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인수합병(M&A)을 통해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도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133조 원을 투자하려던 기존 계획에서 더 나아가 그 규모를 171조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오스틴에 해외 첫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라인을 구축해 5나노 공정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미정상회담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국내 4대 그룹 주요 기업인들은 21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19~20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삼성전자에서는 김기남 부회장이 미국 출장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협력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얼마나 구체적인 투자 계획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급망 강화 요청에 화답할지 관심이 쏠린다.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