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K반도체’ 전략을 내놓은 데 이어 다음 달에는 ‘K배터리’ 전략을 공개하며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 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다. 배터리 시장에서는 현재 한중일 3국이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세계 최대 내수 시장에 기반한 중국 배터리 업체의 가파른 성장세에 배터리 산업도 수년 전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액정디스플레이(LCD)’와 유사한 구도로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아울러 한국형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 기술 확보를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탄소 중립 에너지원 확보에 힘을 준다.
정부는 이 같은 신산업 활성화 및 반도체 산업 호황 등으로 올해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해운용 선박 부족 및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가 수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간담회에서 “다음 달 K배터리 전략 발표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이른바 ‘K배터리 3사’가 앞서가고 있지만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 움직임 및 CATL 등 중국 업체의 발 빠른 점유율 확대 전략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게임 체인저’가 될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는 도요타 등 일본 기업이 앞서 있다는 평가가 많은 만큼 연구개발(R&D) 부문 강화를 통한 기술 확보가 필수다.
정부는 국내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배터리 인재 육성 방안 및 관련 R&D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K배터리 전략을 내놓아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할 방침이다. 정부가 지난달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및 인재 육성 방안을 담은 K반도체 전략을 공개하며 ‘초격차’에 힘을 줬던 만큼 유사한 정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문 장관은 이날 간담회 모두발언의 절반 이상을 산업 분야에 할애하는 등 산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관가에서는 청와대가 남은 임기 1년 동안 미래 산업 육성에 힘을 줘 국내총생산(GDP)과 수출 등의 지표 상승을 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장관은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핵심 전략 산업의 공급망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분야는 백신 원부자재 등을 R&D 사업에 추가로 포함해 더욱 발전시켜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연내 탄소 중립 산업 대전환 전략을 마련하려고 하는 한편 ‘탄소 중립 산업구조로의 전환 촉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산업 디지털 전환 연대 활동을 바탕으로 산업의 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문 장관은 올해 수출 전망과 관련해서는 “지난 2018년 실적(6,048억 달러)을 뛰어넘어 올해 연간 기준 사상 최대 수출 기록을 경신하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문제 및 물류 비용,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대해서는 우려를 드러냈다. 문 장관은 “수출 물류 문제와 원자재 수급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 부처와 힘을 모아 대응하겠다”며 “차량용 반도체 문제는 세계적인 수급 불균형을 고려했을 때 단시간 내에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우리 정부는 7일 ‘수출입 물류 비상대응전담반(TF)’ 2차 회의를 통해 미주행 운항 선박을 월 4회로 증편하는 방안 등을 공개했지만 이 같은 물류 문제는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해결을 위해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와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인 르네사스·인피니언 등에 반도체 수급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이 또한 연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장관은 i-SMR 기술 개발을 위한 예타 의뢰 및 원전 수출을 위한 미국과의 협력 강화 등으로 미래 원전 기술 확보에 힘을 주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또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의 역할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탈원전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언론의 원전 관련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원전 수는 줄지만 60년 이상 가동될 것이며 오는 2050년에도 원전 9기가 남게 된다”며 “탄소 중립에 있어 원전은 여전히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전 산업을 유지할 기회 요인도 여전히 있으며 미국과 합의해 해외 원전 수출길을 뚫은 것은 원전 산업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해법의 일환”이라며 “원전의 안전성을 담보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원전에 대한 정책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세종=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