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코인마켓캡 일간 거래액 기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빗이 한밤중 기습적으로 8개의 코인 상장폐지를 결정하고 28개는 상장폐지 전 단계인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정부의 현장 실사가 시작된 날 밤 단행된 것으로 정부발(發) ‘잡코인’ 정리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코인빗에 따르면 이 거래소는 전날 오후 10시 “△렉스(LEX) △이오(IO) △판테온(PTO) △유피(UPT) △덱스(DEX) △프로토(PROTO) △덱스터(DXR) △넥스트(NET) 등 8개 코인의 거래 지원이 23일 오후 8시부로 종료된다”며 “이들 암호화폐는 현 시간부로 다른 거래소로의 출금만 지원된다. 출금 지원 서비스는 29일 오후 8시까지”라고 밝혔다. 코인빗은 이와 함께 메트로로드(MEL) 등 28개 암호화폐도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하고 오는 23일 상장폐지 여부를 최종 심사하겠다고 했다.
코인빗은 은행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등 금융정보분석원(FIU) 신고 필수 항목 중 은행 실명 계정은 없지만 ISMS는 받은 곳이다. 그동안 공격적인 이벤트로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상장폐지가 결정된 렉스는 지난 14일 종가가 4,980원이었지만 15일 1,015원으로 거의 5분의 1 토막 났고, 16일 오후 3시 40분 현재 추가 하락한 450원에 거래되고 있다. 가격이 91%나 폭락한 것이다. 다른 코인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업계 1위 업비트뿐만 아니라 중소형 거래소에서 사실상 ‘묻지마’ 식 상장폐지가 단행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도 폭주하고 있다. 업비트는 11일 25종의 코인 투자유의종목을 지정하며 “팀 역량 및 사업, 정보 공개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 역량, 글로벌 유동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내부 기준에 미달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5종의 코인에 모두 같은 이유를 달았고 구체적인 내부 기준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15일 코인빗은 업비트의 설명을 거의 그대로 따와 “팀 역량 및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과 기술 역량 등 글로벌 유동성 등을 평가하는 내부 거래 지원 심사 기준에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아울러 코인을 상장할 때는 나름의 기준을 토대로 믿을 만하다며 상장시켜놓고 갑자기 상장폐지를 하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거래 수수료는 챙기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높다.
특히 코인빗은 다른 거래소가 하는 투자유의종목 지정 이후 상장폐지라는 절차도 밟지 않았다. 보통의 거래소는 투자유의종목이라도 지정을 한 후 해당 코인 발행사로부터 소명을 듣고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지만 코인빗은 곧장 8종의 코인 상장폐지를 공지했다. 코인빗 관계자는 “상황이 워낙 긴박하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당 코인의 해외 거래소 입출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5일 코인빗은 상장폐지가 결정된 덱스는 해외 거래소인 디지파이넥스에서 입출금을 조만간 지원할 예정이고 넥스트·판테온·덱스터·프로토도 곧 해외 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특정금융거래법이 시행되는 9월 24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으로 상장폐지된 코인을 해외 거래소로 옮길 수 있게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거래소의 잡코인 줄상폐는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는 FIU 신고에 앞서 현장 컨설팅을 신청한 거래소에 실사를 나가고 있다. 코인빗도 15일부터 당국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고 당장 이날 저녁 코인 퇴출을 발표했다. 물론 정부가 거래소에 잡코인을 상장폐지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가능성은 없지만 거래소는 실사 과정에서 정부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대규모로 코인 상장폐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행 실명 계정을 갖고 있는 빗썸·코인원도 코인 퇴출을 발표할 것이라는 말이 파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