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라 정부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사실상 재편성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 추산보다 소상공인의 예상 손실이 더 크게 불어나면서 추경안을 원점에서 뒤집어 엎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내부에서는 “이대로 여당에 끌려다니다가 추가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초 올해 2차 추경의 지출 내역서는 △전국민 지원(10조7,000억원) △소상공인 지원(3조9,000억원) △카드 캐시백(1조1,000억원) △국채 상환(2조원) 등 크게 나눠 4개 축으로 짜여졌다. 코로나19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소비를 촉진을 유도해 경기회복에 ‘부스터 샷’을 놓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사상 최악 수준으로 확산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당장 자영업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거리 두기 4단계 조치가 ‘통행금지’ 규제로 불릴 정도로 강도가 세 클럽과 같은 영업금지업종은 물론 식당과 같은 영업제한업종도 사실상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11일 “이번주에 잡혀 있었던 단체 예약이 전부 취소됐다”며 “1~2인 손님이 많은 백반집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식당은 모두 정상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재부와 소상공인 지원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번 2차 추경에서 ‘지원금’ 성격을 띄는 ‘희망회복자금’에 3조3,000억 원을 배정했으나 소상공인의 피해만큼 보상해주는 ‘손실보상금’에는 월 2,000억 원씩 7~9월 석 달 치 예산밖에 배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2,000억 원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자영업자 67만8,000여 곳의 영업이익 감소분을 정부가 직접 추산해 월 평균치로 나눈 수치다. 그러나 추산 당시보다 거리두기 단계가 더 상향됐고 최소한 8월까지는 고강도 규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관련 예산을 더 늘려야 할 처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예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면 임대료 등 고정비용도 보상해달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 있어 정부 재정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당초 고정비용 손해로 월 평균 3,500억원을 전망했는데 여기에 영업이익 추가 손실분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월 평균 보상 예상 금액은 6,000억 원 이상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석 달 치만 계산해도 지금 예산보다 1조2,000억 원이 더 필요한 셈이다.
여기에 당초 전국민 하위 80%에 지급하기로 한 국민지원금은 전(全)국민 지원으로 선회가 유력한 상태다.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송영길 당 대표도 “가능한 많은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혜택이 돌아가게 하겠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지급 대상을 90% 선으로 올리는 방안도 있지만 이 또한 행정비용 지급 등 논란이 불가피 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100% 지급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1인당 25만원인 지원금액을 조정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여기에 필요한 자금만 2조6,000억 원에 이른다.
또 희망회복자금도 여당을 중심으로 지급 총액을 1조 원 이상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거론되는 추가 지원액을 단순 합산하면 추가 필요 예산이 4조8,000억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현 시점에서 효용이 사라진 신용카드캐시백(1조1,000억원)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정부 안팎에서 거론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애초에 신용카드 캐시백으로 소비를 진작할 수 있다는 전제부터 의문스러웠던 상황”이라며 “지금이라도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분야에 예산을 더 편성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조 원 규모 국채 조기상환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아예 적자국채까지 더 찍어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청와대조차도 여당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소상공인과 전국민 지원금 모두 과감하게 더 늘려 위기를 넘자고 여당이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돌파해낼 만한 무기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다만 적자국채 추가 발행이 현실화 할 경우 ‘국고채 공급 과잉에 따른 투자자의 인수 여력 축소 → 국고채 금리 상승(국채값 하락) → 국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고민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내년에 국가 채무비율이 50% 선을 넘기면 신용등급 하락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우리 경제를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태곤 기재부 예산정책과장은 이에 대해 “현재 국채 상환을 포기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