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셀 합작공장(JV)을 설립한다.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간 배터리 회동 이후 양 사의 협력이 가시화하는 것이다. 양 사는 이번 협력을 계기로 미래 전기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 사는 29일 인도네시아 카라왕 지역의 33만㎡ 부지에 연산 10GWh 규모의 배터리셀 제조 공장을 세운다고 밝혔다. 전기차 15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물량이다. 두 회사가 합쳐 11억 달러(약 1조 1,700억 원)를 투자해 50%씩 지분을 나눠 갖는다. 양 사는 3분기 중 합작법인 설립을 완료한 뒤 4분기에 합작공장 착공에 나설 예정이며 오는 2024년 상반기 내에는 배터리셀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합작공장에서는 고성능 ‘NCMA 리튬이온’ 배터리셀을 생산하게 된다. 고함량 니켈(N), 코발트(C), 망간(M), 알루미늄(A) 등이 추가된 배터리다. 현대차그룹은 배터리 합작공장에서 공급되는 배터리를 자사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전기차에 오는 2024년부터 탑재할 예정이다.
정 회장과 구 회장은 지난해 6월 충북 청주의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두 손을 맞잡았다. LG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 회동 이후 두 총수는 미래 전기차 및 배터리 기술 동향과 협력 방안을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이번 협력은 ‘윈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향후 급속도로 성장할 전기차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23개 전기차 모델을 투입해 연간 판매량을 100만 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배터리 규모는 25GWh에 달한다. LG그룹 입장에서는 업계 큰손인 현대차그룹과의 거래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동남아시아 최대 자동차 시장이지만 아직 전기차 시장 초기 단계인 인도네시아를 공략하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모두에 아세안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약 100만 대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가 9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점유율은 기아가 0.2%, 현대가 0.1%로 1%가 채 되지 않아 성장 잠재력이 크다. 또한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매장량과 채굴량도 세계 1위로, 전기차 산업의 핵심 공급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생산 기지를 통해 아세안 전체 시장 공략을 위한 교두보도 마련하게 됐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배터리셀을 생산하면 아세안 시장의 높은 역외 관세 벽(최대 80%)을 넘을 수 있다. 아세안자유무역협약(AFTA)에 따르면 참가국 간에는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일 경우 무관세 혜택이 주어진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이번 합작으로 미국·유럽·중국·한국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글로벌 5각 생산 체제를 완성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번 합작으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톱티어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기술력과 오랜 기간 축적된 당사의 완성차 생산 및 품질 관리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