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얼굴의 젊은 대표가 이끄는 자율주행로봇 개발사가 카카오의 지갑을 열었다. 뉴빌리티는 지난달 21일 카카오의 투자 전문사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로부터 수십억 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캡스톤파트너스·퓨처플레이·신한캐피탈로부터 14억 원 상당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이번 투자 유치로 누적 투자액 약 50억 원을 달성했다.
1997년생 10월생. 만 23세에 불과한 이상민 뉴빌리티 대표는 어떻게 카카오로부터 수십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을까.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 재학 중이던 2017년 뉴빌리티를 설립한 이 대표는 세 차례의 피벗을 거친 뒤 약 3년 전부터 자율주행로봇 개발에 뛰어들어 현재까지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강남구 뉴빌리티 본사에서 그를 만나 뉴빌리티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카카오가 점찍은 배달용 자율주행로봇, ‘뉴비’
올 가을이면 도심 곳곳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귀여운 자율주행로봇을 발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대표는 오는 10월 인천 송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와 강남 3구, 종로구와 여의도에서 배달용 자율주행로봇 ‘뉴비‘의 실증 운행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단풍과 함께 일상 속으로 들어올 뉴비, 과연 어떤 로봇인지 이 대표에게 자세히 물었다.
Q. 뉴비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로봇인가?
A. 멀티 카메라 시스템 기반의 자율주행로봇이다. 자율주행 과정에서 필수적인 위치 추정과 경로 설정을 카메라 기반으로 구현했다. 멀티 카메라 시스템을 갖춘 뉴비는 360°로 주변 환경을 인식해 자기 위치를 추정하고, 경로를 설정한 뒤 스스로 주행한다.
Q. 라이다가 아닌 카메라 기술을 선택한 이유는?
A. 우선 카메라 기반으로 자율주행로봇을 설계하면 라이다의 10분의 1 규모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로봇 상용화가 중요한 현 시점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엄청나게 큰 파워다. 두 번째로 눈이나 비가 오는 환경에서는 라이다보다 카메라가 낫다.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로봇은 적어도 비나 눈이 내린다고 주행을 못하지는 않는다. 빛을 쏘는 라이다는 물방울을 맞으면 흩어질 수 있다.
그리고 카메라 기반으로 자율주행로봇을 설계하면 딥러닝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확장성이 좋아진다. 주변 환경의 이미지 데이터를 반복 학습해 딥러닝 기술을 고도화하면 결국 인간보다 더 뛰어난 주행 성능을 보일 수 있다.
Q. 로봇 가격 절감이 뉴빌리티의 최우선 목표라고.
A. 그렇다. 로봇 가격이 낮아져야만 자영업자들이 무리 없이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근 2-3년간 집중한 건 단 하나, 어떻게 하면 수십년간 고착화된 배달산업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다. 지금까지의 배달 산업은 항상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로 이뤄졌다. 배달앱은 높은 수수료를 떼고 배달대행사도 비싼 돈을 받지만 수요가 폭발하거나 눈·비가 내리는 날엔 배달원이 없어서 달라는 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배달 품질은 보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배달에 로봇을 활용하면 배달비는 저렴해지고 배달 품질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영업자들이 사람 대신 로봇을 쓰려면 배달 오토바이 가격보다는 저렴해야 한다. 배달로봇 가격이 장기적으로는 300만 원대까지 낮아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뉴빌리티는 현재 로봇의 ‘코스트 다운’에 미치도록 집중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면서도 가격 측면에서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실제 도로에서 주행이 가능할까?
Q. 만약 낙엽이나 눈이 카메라를 가리면 어떡하나?
A. 낙엽이나 눈이 카메라를 가리면 해당 카메라에서 나오는 정보는 활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뉴비는 멀티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해 주변 환경을 360°로 인식하기 때문에 카메라 하나가 가려지더라도 자율주행 기술이 작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Q. 복잡한 골목길에서는 주행이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A. 골목길에서 주행을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도로 자체가 굉장히 복잡할 뿐더러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유동인구는 많은지, 길은 복잡한지 등에 대한 데이터셋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경로 설정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킥보드 회사인 씽씽과 함께 골목길, 즉 이면 도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결국 자율주행에서는 경로 설정이 중요한데, 내비게이션만 봐도 항상 최적 추천 경로라는 게 있다. 예컨대 종로에서 강남까지 갈 때 한남대로에서 남산터널로 오게 하지 둘레길을 타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 로봇도 동일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모든 길을 다 가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있는 길을 가야 한다는 의미다. 굳이 복잡한 길을 갈 필요 없이 최적 경로를 선택하면 된다. 현재 배달로봇 전용 내비게이션을 개발 중이다. 강남구는 이미 데이터를 수집해 놓은 상태다. 마이크로 모빌리티 사업자들과 적극 협력해 지속적으로 데이터셋을 확장할 계획이다.
자율주행로봇 관련 규제, 어디까지 왔을까
Q. 규제도 많을 것 같다.
A. 해결할 게 너무 많다. 특히 실외 배달로봇은 여러 정부 부처 간 규제가 상당히 많이 걸려있다. 먼저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로봇은 주변 이미지를 수집해야 주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굉장히 중요한데 현행법에 따르면 3일 이상 보관이나 수집이 불가능하다. 마스킹이나 블러 처리 등 적합한 조치를 한다면 실외 배달로봇 주행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일반인이 사적 목적으로 촬영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기술 개발 측면에서는 규제가 일정 부분 해소될 필요가 있다.
두번째로 현행 생활물류법에서는 물류를 나를 수 있는 주체로 로봇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류는 사람이나 자동차, 오토바이가 나르는 것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배달로봇이 등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없이도 물류 운송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주를 중심으로 로봇에게 보행자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번째로 현행 도로교통법은 로봇을 명확히 분류·정의하고 있지 않다. 로봇이 단순히 차로 분류되는 탓에 인도에서 주행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로봇을 쿠팡이츠, 배민원처럼 하나의 배달원으로 보면 어떨까? 배달원이라면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타고, 실내로 진입해서 ‘도어 투 도어’ 배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실제 그런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행 공원녹지법에 따르면 공원이 로봇에 들어갈 수 없다. 예컨대 여의도역에서 국회의사당까지 배달하려면 여의도공원을 지날 수 없어서 뺑 돌아가야 한다. 말이 안된다(웃음). 공원녹지법 같은 경우는 관할 지자체 권한이 껴있는데 지자체마다 입장이 다 다르다. 각 지자체에 허락을 일일이 다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우주 변기 설계한 소년이 카카오에서 수십억 투자를 받기까지
이상민 대표는 인하사대부고 재학 시절 미 항공우주국(NASA)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특별한 이력이 있다. 무동력 시스템으로 디자인한 ‘우주 변기’ 아이디어를 출품해 ‘미국 청소년 아이디어 공모전’ 항공우주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재학 당시에는 초소형 위성도 직접 개발했다. 남다른 도전을 멈추지 않던 소년은 몇 년 뒤 '포브스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선정된 데 이어 카카오로부터 수십억 원의 투자를 받은 유망 스타트업의 대표로 성장했다.
Q. 비교적 어린 나이에 큰 성과를 이뤘다. 어려움은 없나?
A. 모든 게 처음이라 겪는 어려움이 많았다.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지, 로봇을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이제 겨우 25살이다. 회사에 다녀본 경험이 없는 내가 회사에 다녔던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한다(웃음). 투자금을 유치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이런 부분에서는 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Q. 극복 방법은?
A. 극복 방법은 단순하다. 부딪혀서 깨지는 것이다. 실제로 많이 깨져서 회사가 두세 번 망할 뻔했다. 극복해보니까 어떻게 하는지 알겠더라.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실수를 했으면 좋겠다. 실수하면서 배우고, 사고도 치고, 할 말도 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 원래 프로가 더 프로가 되기보다는 실수를 통해 프로로 성장하는 조직이고 싶다. 다들 완벽하길 원하지만 우리는 장난기 있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 실수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이 좋다고 생각한다. 바이블같은 회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안될 거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걔들이 옳았다고 얘기하는, 그런 특이한 애들 말이다.
뉴빌리티의 미래
Q. 향후 1-2년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A.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가운데서 배달로봇 규제를 풀어내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국내 최초로 유료 로봇배송도 상용화할 예정이다. 지금은 로봇 제품화와 연구 단계를 분리 중인데, 연구 단계에 있는 요소를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올 9월에는 전문 산업디자인 회사와 협업해 제작한 새로운 정식 뉴비가 나온다. 10월에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Q.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A. 당연히 지금 당면한 과제를 풀어서 배달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최종 목적지를 고민해본다면, 남들이 봤을 때 미친 것 같은 일들을 해서 결국 희망을 심어주는 기업으로 뉴빌리티를 성장시키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회사.
테슬라도 자동차 파는 회사고 누가 뭐래도 자율주행을 선도하고 있지 않나. 운전하는 문화 자체를 바꾸고 전 세계를 뒤집는 기술을 만든다. 연장선상에서 스페이스엑스도 처음에는 로켓을 왜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분명 우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괴짜들이 있었다. 로켓이 몇 번씩 터지고 부러지고 늘 실수하지만 결국 해내서 인류의 미래를 개척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그들이다.
Q. 가슴 뛰는 일?
A. 창업이 단순한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또래를 포함한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 내게는 그게 가슴 뛰는 일이다. 일종의 사명감도 느낀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아직 기업을 만든다는 건 상상조차 잘 하지 못한다. 일례로 최근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우주에 다녀왔다. 그러면서 한 얘기가 나처럼 늙은 노인도 우주에 왔다며 이걸 보는 지상의 어린이들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자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꿈의 크기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말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는 없는 사람이 없다. 기름 치는 사람부터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 그걸 돈으로 바꾸는 사업 디벨로퍼, 재무·회계와 홍보 담당까지. 종합 선물 세트다. 지금은 배달 산업을 혁신하겠다는 집단이지만 10년 뒤에는 우주선을 만드는 회사로 변할 수도 있다. 도전적인 관점에서 일을 마구 벌리고 싶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