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언론법은 민주주의 걸림돌” 고백에 與 의원들 동참하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언론의 정권 비판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 ‘언론 재갈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새벽 4시쯤 국회 법사위에서 언론사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민주당은 당초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법사위를 통과한 날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요청으로 일단 본회의를 연기했다. 민주당은 30일 본회의를 열어 법안 통과를 강행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여당 내부에서 입법에 반대하는 자기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으면서 “결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고백했다. 조 의원이 말했듯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옳지도 않으며 떳떳하지도, 이롭지도 않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조 의원은 법안의 일부 조항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론 보도까지 위축시켜 권력 비판·감시 기능과 국민의 알 권리 침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걱정했다. 현직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임원 등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가능 대상에서 제외했다지만 전직 고위공직자나 친인척, 비선 실세 등 측근은 여전히 대상에 포함된다는 게 조 의원의 지적이다. 의혹 단계 보도를 사실상 차단하는 이 법안이 시행된다면 ‘최순실 사건’과 같은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기사는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조국 일가의 비리 의혹이나 권력의 선거 개입 등과 같은 정권에 불리한 사건 보도를 막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해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규정이 빚어낼 과도한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자의적 기준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언론이 매우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돈으로 언론을 겁박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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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의원은 “더 큰 문제는 (여당이) 수적 우위를 믿고 오만에 빠져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이 오만과 폭주 행태로 4월 보선에서 심판을 받았는데도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같은 당의 오기형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의 활동과 관련해 이 점(가짜 뉴스에 대한 징벌)만 특화하여 징벌배상 제도를 논의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의문”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대선 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언론의 비판과 견제 기능에서 사회적 손실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여권 원로들의 걱정도 크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입법을 해도 늦지 않다”고 했고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금 환경에서 처리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국제 언론 감시 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는 성명을 통해 “저널리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개념 정의도 모호한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적용은 언론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언론 단체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한국기자협회에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는 창립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도 침묵하면서 언론 재갈법 처리를 방조하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언론 징벌법’은 반(反)민주 악법임이 명확해졌다. 여당의 다른 의원들도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독선과 오판의 동굴에서 벗어나 잘못을 고백하는 행렬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국민·언론의 눈과 입을 가리려는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으면 민주당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외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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