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택지 내 민간 분양분뿐 아니라 ‘2·4 대책’ 관련 사업지에서도 사전청약을 받겠다고 나섰지만 심각한 수급 불균형 상태인 수도권 주택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2·4 대책 후보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반대가 여전한데 정부가 나서서 ‘알박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사전청약 대상에 오른 2·4 대책 후보지 중에서는 반대 운동을 벌이는 곳이 적지 않다.
사전청약은 ‘조삼모사’ 식 정책으로 전세 난민 양산에 희망고문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불안 심리를 달래주는 효과야 있겠지만, 시장 안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에 사전청약을 하더라도 입주는 오는 2026∼2032년에야 가능할 것이고, 아랫돌 빼서 윗돌 끼우는 조삼모사라 근본적인 공급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임대차 시장만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사유재산 뺏기란 말이냐”…사전청약 ‘알박기’ 비판=정부의 이번 대책 골자는 수도권 공공택지 민영주택과 2·4 대책을 통해 공급되는 공공주택 등 10만 1,000가구를 올해 하반기부터 사전청약 방식으로 조기 공급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공공택지 공공주택만 사전청약 대상이다. 이에 따라 사전청약 물량이 기존 6만 2,000여 가구에서 16만 3,000여 가구로 늘어난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 신규 택지 민영 주택 6,000가구가 사전청약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후보지로는 인천 검단, 고양 장항, 양주 회천 등지가 예상된다. 공공택지 민간 주택에서는 총 8만 7,000여 가구가 공급된다. 2·4 대책 주택은 내년 하반기 4,000가구부터 사전청약으로 나온다. 이미 지구지정 요건(3분의 2 동의)을 충족한 은평구 증산4, 도봉구 방학역 일대, 영등포구 신길2 등 서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 13곳(1만 9,000여 가구)이 대상이다.
일단 이번 사전청약 확대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날 공개된 계획에 따르면 현 정부에서 공급되는 물량은 전체 16만 3,000가구 가운데 6만 9,000가구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내년 하반기 이후로 예정돼 있다. 차기 정부에서 이번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기존 2·4 대책 개발 반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도심복합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지역별 비상대책위원회가 연합한 ‘3080공공주도반대연합회(공반연)’는 이날 정부 발표가 나온 뒤 긴급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2·4 대책 관련 사전청약 신청자들은 사업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분양을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택지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청약을 진행하는 만큼 여러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데…전월세 난민 양산 우려도=국토부는 사전청약을 확대하기 위해 앞으로 2023년까지 모든 공공택지는 계약 6개월 내 사전청약을 하는 조건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미 매각된 택지를 보유한 업체가 제도 개편 후 6개월 내 사전청약을 시행하면 다른 공공택지를 공급할 때 우선공급·가점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전청약을 한 사업장에서 추후 본청약 시 사전청약 당첨자 이탈로 미분양이 발생하는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공공이 분양 물량 일부를 매입하는 제도도 도입한다. 한마디로 사전청약에 ‘올인’하는 셈이다.
이 같은 정부 계획에 대해 우선 사전청약이 이미 예정된 공급 물량의 청약 시기를 인위적으로 당기는 것뿐이어서 시장 안정에는 큰 효과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언제 입주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전청약 대기 수요가 장기간 전·월셋집을 전전해야 해 가뜩이나 심각한 임대차 시장을 더욱 악화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입주 때까지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야 해 기약 없는 ‘청약 난민’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공공택지 내 민간 분양 사전청약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민간 기업들의 참여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민간 사업자들에게 타 공공택지 우선공급·가점 등 혜택을 제공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사전청약의 경우 계약금 등 실제 비용 납입이 없어 공사비 충당이 되지 않는데다 이후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준공 일정에 대한 부담만 떠안게 되는 만큼 참여율이 마냥 높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혜택보다 부담감이 더 커지는 상황이어서 자금 여력에 한계가 있는 민간 업체들로서는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