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내 증시는 ‘역동적’ 그 자체였습니다. 반도체 패닉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셀 코리아’ 행렬이 이어지며 3,06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가 기관들과 개인들의 매수세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듯 하더니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결정되며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지난 2018년 11월 이후 처음 이뤄진 금리인상은 그동안 한은이 몇 달 째 시사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습니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연내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충격파를 피할 수는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금리인상이 발표된 날 반짝 순매수에 나섰던 외국인 투자가들은 하루 만에 3,700억 원의 매물을 쏟아냈고 코스피지수는 4거래일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습니다. 삼성전자(005930)는 ‘7만 전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SK하이닉스, NAVER(035420) 등 대장주들이 연이어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과거 추이를 보면 ‘금리 인상=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가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결국 그 기업의 실적, 즉 내실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8일(현지 시간) 연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작을 시사하면서도 금리 인상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애매한(?) 발언을 내놓으며 국내 증시가 다시 반등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돼 증시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 후 2번은 오르고 1번은 떨어져…2010년 국면과 비슷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사상 최저 수준(0.5%)까지 낮아진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올랐습니다. 한은이 15개월 동안 주도했던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기도 하죠. 지난 해 3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 0.5% 포인트를 한 번에 낮추는 ‘빅컷(1.25%→0.75%)’을 단행했고, 두 달 뒤인 4월 추가 인하(0.75%→0.5%)를 통해 모두 0.75%포인트를 내렸습니다. 이후 동결을 지속하다 결국 15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입니다.
금통위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이 그동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던 부작용으로 인해 가계대출 증가, 자산 가격 상승 등 ‘금융 불균형’이 심해진 데다가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5월 금통위때부터 수 차례 금리 인상 논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지난 달 15일 금통위 회의 직후에는 “거시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통화 정상화로 대처해 나갈 필요성이 커졌다”는 발언을 통해 사실상 금리 인상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금리 인상이 국내 주식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금리 인상에 따른 긴축 우려로 코스피 지수가 큰 충격을 받을까요.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과 미국의 테이퍼링이 예정된 가운데 당분간 증시가 3,100선을 기준으로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한은이 국내 경기가 튼튼한 기본을 바탕으로 회복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 금리인상을 진행한 만큼 한국 증시가 이 정도의 ‘긴축 잔매’를 버텨낼 체력이 있다는 평가가 중론입니다.
이들은 기준금리 인상이 국내 증시에 단기적으로 ‘잔파도’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인상 재료가 이미 시장에 반영된 상태라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고,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금리 인상이 증시에 좋은 재료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시장을 압박할 재료가 아니다”며 “대외 수출 경기, 미국의 통화정책, 코로나19에 따른 내수 회복 속도 등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식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위안이 되는 내용인 듯 싶습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한 점인 “과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증시는 하락할까요?”라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아니다”고 대답한 것이죠.
이는 과거 데이터로도 증명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한은의 금리 인상은 세 번의 국면이 있었습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중국 등 신흥국 경기가 글로벌 경제 호황을 주도했던 때와,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이후였습니다. 2017년~2018년은 반도체 호황 이후 미중 무역갈등 전이었습니다.
한은의 금리 인상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두 번은 오히려 증시가 올랐습니다. 2005년 10월~2008년 8월 기준금리가 3.25%에서 5.25%로 인상됐는데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20.74% 상승했고, 2010년 7월~2011년 6월 금리가 2%에서 3.25%로 오를 때 코스피지수도 23.69% 뛰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 주가수익비율(PER)이 다소 하락하는 경향이 있으나 경기 호조에 따라 기업 이익은 더 크게 오르며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 2017년 금리 인상(1.25%→1.75%) 국면에서는 코스피가 17% 가량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금리인상 보다는 미중 갈등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금리 인상 이후 1주일 동안 국내 증시는 조정세를 보였습니다. 지금과 비교적 유사했던 국면은 2010년~2011년이었습니다. 이 때는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벗어난 직후 한국 수출이 지금처럼 두 자릿수 대 이상의 호황을 이어나가며 코스피가 6개월 동안 20% 이상 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실적이 더 중요…장기적 영향은 미미, 은행·보험주 주목
이제는 기정사실이 된 금리 인상보다는 글로벌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기업의 실적 개선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요소들이 장기적으로 증시를 결정할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내년까지 이어질 상장 기업들의 실적 증가가 곧 주가를 이끌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많습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보다 경기와 실적이 중요하다”며 “금리 인상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기준 금리가 기업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한국 기준금리와 코스피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과는 관련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금리가 인상되는 국면에서 경기가 좋아 한국기업들의 EPS가 상향 조정됐는데, 금리인상은 주가이익비율(PER)의 소폭 하락 요인이지만, EPS 등의 실적으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단기 변동성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난 7월부터 한국 증시를 괴롭혀온 대내외 변수들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경착륙 우려, 강달러에 따른 외국인 매도세,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팀장은 “당분간 방망이를 짧게 잡고 단기 대응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코스피 3,100선 이하에서는 매수 대응을 하되 반등을 따라가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적어도 두 세 차례 추가적 금리인상까지는 이 견해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 경제와 기업들의 주변 여건이 미국보다 불리함에 따라 전문가들은 금융주나 내수주를 추천했습니다. 현재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은 예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거리두기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가계부채 통제는 내수의 폭넓은 회복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도 부담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은의 금리인상이 내수 호조보다 ‘금융 불균형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금리 상승에 좀 더 민감한 은행과 보험 업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시장금리 및 은행 금리 상승이 이어진다면 금융 기업들의 이익률이 큰 폭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주의 투자 심리뿐 아니라 이자 부문의 수익성에도 긍정적”이라며 은행주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그는 “국내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4분기 1.67%에서 올 2분기 1.74%로 상승하기는 했지만 상승 폭이 둔화된 감이 있는데 이는 은행 금리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준금리 상승은 앞으로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은행들의 예대 금리 차와 NIM 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금통위의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은행주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보험주 역시 금리 인상 시 이익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대표 업종입니다. 보험사는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를 채권·부동산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하는 경향이 높은데 기준금리 인상은 채권 투자수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의 근거가 경기회복이라는 점에서 경기민감주에 다시 관심을 가져볼 것을 권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세 번의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당시 업종별 주가 등락률을 보면 소재·산업재를 주축으로 한 시클리컬(경기민감주) 수출 자본재의 상대 우위가 확연히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