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330야드의 짧은 파4인 10번 홀. 이다연(24)은 드라이버 샷으로 287야드나 보냈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볼이 그린 왼쪽 러프에 잠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뒤 이다연은 깡총 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프로치 샷이 깃대를 맞고 쏙 들어간 것. 한꺼번에 2타를 줄이는 칩인 이글이었다. 이 샷으로 2위 최혜진과는 5타 차. 일찌감치 터진 쐐기 포였다.
‘작은 거인’ 이다연이 2019년 12월 이후 630일 만에 다시 트로피를 들었다. 이다연은 29일 강원 춘천의 제이드 팰리스GC(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 클래식(총상금 14억 원)에서 나흘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우승했다. 2위와 7타 차의 압승이었다. 통산 6승이자 메이저 대회 두 번째 우승. 2라운드 후반 첫 홀부터 4라운드 마지막 홀까지 45홀 노 보기 질주가 눈부셨다.
우승 상금은 2억 5,200만 원. 시즌 상금 14위였던 이다연은 단숨에 상금 5위(약 4억 7,500만 원)로 뛰어올랐다. 시즌 2승으로 상금 3위에 올랐던 2019시즌 이상의 모습도 기대할 만하다.
6년 차 이다연은 157㎝의 크지 않은 키로도 장타를 날린다. 이날도 250~60야드를 쉽게 보냈다. 올 시즌 우승 없이 3위만 세 번 했던 그는 “우승을 목전에 두고 놓친 적이 많아 파이널 라운드가 떨린다”고 했는데, 최종 4라운드에 위기 한 번도 없이 독주를 펼쳤다.
전날 코스 레코드 타이 기록인 7언더파 65타를 쳐 3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선 이다연은 이날 4라운드에서도 이글 1개와 버디 4개로 6타를 줄이는 무결점 플레이를 이어갔다.
2위 최혜진에게 첫 홀에 버디를 맞아 2타 차로 쫓겼지만 5번 홀(파3) 2m 버디로 다시 달아났다. 8번 홀(파4) 5m 버디로 여유를 찾은 이다연은 10번 홀에서 홀 가장자리를 빙글 돌아 들어가는 이글을 터뜨리며 우승을 예약했다. 12번 홀(파5) 버디 뒤 최혜진의 보기가 나오면서 이다연은 네 홀을 남기고 7타 차까지 거리를 벌렸다.
이다연은 그동안 이 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다섯 차례 출전해 톱 10 진입이 없었고 컷 통과도 두 번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회 역대 최소타 기록을 6타나 경신하며 역사를 썼다.
경기 후 이다연은 “도쿄 올림픽 양궁 안산 선수의 ‘쫄지 말고 대충 하자’는 말을 계속 생각하면서 경기 했다. 덕분에 긴장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며 “그동안 우승이 나오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이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내려놓고 좋은 흐름으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2위 싸움의 승자는 최혜진이었다. 거의 넉 달 만에 최종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경기한 그는 12언더파로 단독 2위 상금 1억 5,400만 원을 받았다. 단독 2위는 올 시즌 최고 성적이다. 신인 홍지원과 베테랑 김지현이 10언더파 공동 3위에 올랐고, 지난주 우승자 임희정은 7언더파 공동 8위로 마감했다. 시즌 6승의 ‘대세’ 박민지는 1타를 잃어 1오버파 공동 39위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