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북한의 영변 핵 시설 재가동과 관련해 남북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남북이 공동 노력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를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최 차관과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고, 대북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한을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최 차관은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한 것이 사실이라도 남북 합의를 위반한 게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영변 핵 시설 재가동이 사실이라면 4·27 판문점 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 취지를 위배한다고 보느냐”고 묻자 최 차관은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 차관은 이어 “4·27 선언이나 9·19 선언의 합의 내용 중 북한이 가시적으로 취한 조치들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앞서 9월 연례 이사회 보고서에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한 징후가 다수 포착됐다고 밝혔다. IAEA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냉각수 방출을 포함해 원자로 가동 정황이 다수 드러났다. 외교부는 최 차관의 발언이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고 청와대 역시 최 차관과 같은 입장이라는 의견을 냈다. 다만 통일부는 공식 입장을 유보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IAEA 보고서가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남북 합의 위반 여부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대북 전문가들은 최 차관의 발언과 관련해 남북 합의 위반이 명확한데 북한을 감싸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 같은 해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 핵 시설을 영구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선언 자체가 북한이 핵과 관련해 진전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핵 시설 가동을 재개했다면 이는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약속한 사항을 어기는 행위가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최 차관의 발언이 북한의 핵 개발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의 핵 개발 움직임이 명확한데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북한이 한 단계 진전된 핵 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할 위험성이 있다”며 “정부의 비핵화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발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일 3국의 북핵 협상 총괄은 다음 주 일본에서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오는 14일 도쿄에서 성 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일 북핵 수석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