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택시를 갈아탄 선배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웃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하나 납득할 수 없는 삶이 너무나 평범하게 존재했다. 사람 답게 살기 위해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를 평범함으로 받아들이며 평생을 바쳐 일해, 궁극적으로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으로 생의 의미를 부여받는 평범씨들. (…) 너무나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별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잖아, 모두가 이렇게 살잖아 하며 독서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이 살지만, 거래처 접대를 위해 밤새 훌라춤을 추며 탬버린을 흔드는 것으로 흘려보내는 우리의 이 삶이 딱 한 번인, 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 예명이 ‘김보통’이 된 이유다.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2017년 문학동네 펴냄)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김보통 작가는 실제로 군무이탈 체포조 출신이다. 제대 후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짐승 같은 가난을 겪던 그는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큰 기업에 사력을 다해 취직한다. 그러나 그곳은 방금 전 퇴근했는데 곧장 출근해야 하고, 눈 붙일 시간도 없는데 회식자리에서 경쟁적으로 술을 마셔야 하는 또다른 ‘군대’였다. 아버지가 암으로 죽어가던 순간에도 그는 회식자리에 가야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잔을 비우고, 저 잔을 받고, 건배를 해서 이 술을 모두 없애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도망친다. 퇴사자 보통씨에게 사람들은 ‘넌 불행해질 거야’라고 경고한다. 2017년 김보통 작가는 아직은 불행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2021년 현재, 부조리와 불합리에서 도망쳐 ‘이야기 아저씨’로 살아가는 그는 여전히 불행하진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 보통씨들이 가는 길엔 무수한 폭력과 불합리가 있다. 이것을 그저 눈감아버릴 수 없는 것은 보통씨들 누구나 언제든 그 극소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