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작고 소식이 국내외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은 거인(巨人)의 별세인 데 더해 막대한 상속세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보니 유족들은 이를 여섯 번에 걸쳐 분납키로 했고, 지난 4월 1차로 2조 원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례는 그간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했던 우리나라 상속세제의 문제점을 짚어보게 만든 기폭제가 됐다. 현재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최대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또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에 따르면, 1억 유로 가치의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실제로 납부하는 상속세도 우리나라가 분석 대상 54개국 중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상속 두 번 했다간 기업이 없어질 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업 상속을 지원하는 공제 제도가 있지만 까다로운 요건 탓에 제도 활용 건수가 연간 100여 건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렇듯 기업 상속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 보니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도 가업 상속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산업 발전에 기여해온 기업인들이 점차 고령화하면서 한평생 일궈온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매각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기업 고유의 기술력을 전수하고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기업 승계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우리처럼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상속세 최고 세율이 55%로 우리나라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인 일본은 2018년 특례 조치를 실시해 중소기업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기업을 물려줄 때 상속세 부담을 전액 유예·면제해주고 있다. 이는 상속세 부담을 완화해 가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경제 활성화와 고용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특례 조치로 일본 내 제도 신청 건수는 이전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났다. 일본의 사례는 기업 ‘사망세’와 다를 바 없는 상속세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제라도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산업 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상속세제의 조속하고 획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율을 낮추는 한편 최대주주 주식 할증 평가 폐지, 가업 상속 공제 요건 완화 같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상속’이 ‘부의 대물림’이라는 편향된 인식을 버리고 상속세를 낮춰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