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없으면 큰 발전도 없다’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말을 늘 가슴속에 품고 있습니다. 간단하지만 세상의 모든 원리를 보여주는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산을 좋아해도 남산에 가는 이가 있고 K2로 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바라볼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영익(51·사진)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본인이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모험의 연속’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예술가를 꿈꿨던 소년은 만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학도가 됐다. 이후 청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늦깎이 법률가로 발돋움하는 등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달려온 삶을 두 개의 단어에 담은 것이다. “탐험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일단 목표가 생기면 무작정 뛰어들고 봤다.
그만큼 인텔리콘연구소에는 임 대표가 추구하는 도전 정신이 담겼다.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법률 정보 시스템’을 선보인 곳이 인텔리콘연구소다.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세계 법률 인공지능 경진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AI 법률 시장’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학창 시절 임 대표에게 과학이나 법은 남의 얘기였다. 공부에 흥미를 보이기보다는 영화감독이나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났고, 이는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꿨다.
“당시 핼리혜성이 지구에 충돌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어요. 그때 한 친구가 핼리혜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을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적어가며 증명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큰 감명을 받았고 곧 물리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단짝이 된 두 학생은 자투리 시간 대부분을 과학에 대한 논쟁을 하며 보냈다. 친구가 “우주선을 타고 있는 내가 우주선이 서 있는지 움직이는지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임 대표가 자신이 지닌 모든 지식을 동원해 답을 제시하는 식이었다. 당시 발동한 승리 욕구가 임 대표를 공부로 이끌면서 차츰 물리학과 수학에 빠져들었다.
“그 친구와 ‘언젠가 꼭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 타임머신에 태우자’고 약속했어요.” 장난 같은 약속이었지만 임 대표는 생명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꿈을 향해 달렸다. 인공 생명체를 위한 생명의 방정식을 찾기 위해 수학·물리학 등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임 대표는 “AI 분야와 관련한 유학을 준비하는 도중에 공백이 생겨 우연히 벤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AI 기술을 접목한 수학 튜터를 개발했는데 예상보다 사업이 커져서 6년간 매진했다. 경쟁에 밀려 큰 재미를 못 봤지만 타 분야 간 융합을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사업을 정리하고 떠난 미국에서 임 대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한국에서 벌였던 교육 서비스가 미국에서는 이제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미국 시장에서는 천문학적인 투자금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앞서간 분야였지만 자본의 힘은 무서웠다. 조그만 구멍 가게 같은 ‘칸아카데미’가 글로벌 기업으로 커질 기미가 보였다. 일각에서는 유튜브가 거액으로 구글에 인수되고 딥러닝 논문이 발표되는 등 놀라운 변화를 지켜봤다.
임 대표는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공지능과 플랫폼 시대의 도래를 직감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됐다”며 “구글·애플 등 빅테크가 넘보지 않는 AI 산업 분야가 무엇이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당초 인공지능 기반의 교육 시스템을 생각했지만 리걸테크(legaltech)를 먼저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법률과 AI가 더 궁합이 맞고 사업적으로도 글로벌 경쟁력에서 유리하다는 지인의 충고에 따른 결정이었다. 임 대표는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는 시기였는데, 앞으로 인공지능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겠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며 “그중 법률은 추론이라는 고차원적 사고력을 필요로 해서 인공지능과 잘 결합시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그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법을 공부했다.
“원래 사법시험까지 생각을 한 것은 아닌데 신림동 선후배들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합격 수기도 많이 찾아보면서 새로운 학습법을 만들어봤습니다. 2차 기출문제를 손으로 풀지 않고 스터디 멤버와 구술로 즉문즉답을 하면서 상대방의 논리 모순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는데, 저는 그것을 ‘상호작용 메타 학습법’이라 불렀죠.”
운이 좋았는지 임 대표는 단기간에 시험에 합격하고 곧바로 사업에 착수했다. 연수원 수료 후에는 인텔리콘법률사무소를 세워 직접 변호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법률 AI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제 법조인들의 니즈와 법률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판사와 검사·변호사의 업무 영역이 각기 다른데 로펌 운영을 통해 수요자에게 맞는 법률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법률 정보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이 압박으로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설렘과 흥분이 있었다고 임 대표는 전했다.
“워낙 생소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라 개발자를 구하는 게 특히 힘들었어요. 사업 초기에는 세계 최초로 법률 AI를 만든다는 긍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돼 충격이 컸어요. 태평양처럼 깊은 공부량에 공포심마저 들 정도였지만 수학자·물리학자 등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첫 법률 내비게이션인 ‘네비렉스(Navi-LEX)’를 개발해냈죠.”
인텔리콘연구소가 길을 뚫은 리걸테크 분야에는 현재 50여 개의 기업이 진출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법률과 IT를 융합해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변호사들도 결국 리걸테크의 혜택을 누릴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일본 리걸테크 시장 진출을 꼽았다. 임 대표는 “앞서 일본 쪽에서 우리 시스템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지만 한일 갈등과 코로나19 여파가 겹치면서 잠정 중단됐다”며 “일본은 우리나라와 법 체계가 비슷해 상황이 안정된다면 본격적인 수출이 기대된다”고 했다. 이어 “법률에 이어 일반적인 지식·정보를 처리하는 ‘유니버설 AI’ 개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 기술을 갖고 20대 때 뛰어들었던 에듀테크에 다시 도전해 세계시장에 내놓고 싶다”고 인텔리콘연구소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He is… △1970년 경남 거창 △1998년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업 △2009년 제51회 사법시험 합격 △2012년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2012년 인텔리콘연구소 대표이사 △2017년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 △2018년 과학기술진흥 유공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