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품귀 현상에 따른 가격 인상을 뜻하는 ‘칩플레이션(Chipflation)’이 전 세계적인 자동차 가격 급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테슬라는 새 모델 출시나 부분 변경으로 가격을 올리는 완성차 업계의 관행을 깨고 8개월 만에 모델3 가격을 13% 올렸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반도체·원자재 공급난이 장기전이 된 만큼 내년까지 차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6일(현지 시간) 모델3 미국 차량 가격을 3만 9,900달러에서 4만 1,900달러로 인상했다. 테슬라가 올 1월 3만 6,900달러에서 시작해 가격을 7번 연속 올린 결과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6월 “가격 인상은 전 산업적인 공급망의 가격 상승, 특히 원재료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부품 수급 문제, 철광석 부족, 배터리용 원자재 품귀 현상 등이 차량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스코는 올해 상반기 자동차용 강판 가격을 톤당 5만 원 인상했고 대만 TSMC는 반도체 가격을 올 8월 최대 20% 올렸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원자재인 탄산리튬 가격은 1년 전 1㎏당 약 6,500원에서 3만 1,600원대로 뛰었다.
자동차 가격 인상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마루티 스즈키 인도 법인은 차량 판매 가격을 올 1월 1.4%, 4월 1.6% 올린 데 이어 9월 또다시 1.9% 인상을 단행했다. 기아자동차 인도 법인도 지난달 차량 가격을 최대 31만 원 높였다. 폭스바겐은 일본에서 차종별 최대 120만 원가량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다. 루카 드 메오 르노 CEO는 7일(현지 시간) “다가오는 1년간 차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량 부품 가격 인상의 여파는 국내에도 몰아치고 있다. 국산 자동차 브랜드들은 신차 출시와 완전·부분 변경, 연식 변경을 통해 가격을 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올해 상반기 승용차 평균 가격은 4,399만 원으로 지난해 4,182만 원 대비 5.1% 상승했다. 현대자동차가 9월 출시한 경차 캐스퍼는 시작가가 1,385만 원으로 경쟁 차종인 기아 레이(1,275만 원)나 모닝(1,175만 원)보다 높게 책정됐다. 광주형 일자리와 온라인 판매를 통해 인건비를 줄였음에도 기존 경차보다 가격이 더 오른 것이다.
현대차가 올해 출시한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디 올 뉴 투싼은 세대 변경을 거치며 최저가가 2,255만 원에서 2,435만 원으로 올랐다. 기아의 동급 SUV 디 올 뉴 스포티지의 시작가는 전 세대보다 46만원 오른 2,422만 원으로 책정됐다. 쌍용차의 대형 SUV인 렉스턴은 연식 변경을 거치며 최저가가 42만 원 올랐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등의 문제가 장기화되고 출고 적체 현상이 심화하는 만큼 내년에는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철강,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 가격이 다 상승하고 있어 결국에는 자동차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점도 가격 상승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