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방산물자 군납기업들에게 불합리하게 지체상금을 부과했던 ‘독소조항’을 개선했다. 이에 따라 협력업체의 잘못으로 국내 방산업계 사상 최대 지체상금을 부과 받은 대우조선해양의 부담도 해소될 지 주목된다.
방위사업청은 방산분야의 과도한 지체상금 부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체계-협력업체 간 권한과 책임에 부합한 합리적인 지체상금 제도 개선’을 시행했다고 1일 밝혔다. 당국이 지정한 협력업체의 잘못으로 납품이 지연됐는데 그에 따른 지체상금을 완성품 제조사(체계업체)가 물어야 했던 부조리를 해소하는 내용이다.
지체상금은 국가와 계약을 체결한 계약상대방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 이행을 지체하는 경우에 국가에서 부과하는 손해배상금 성격의 금액이다. 지체상금은 납품 지체 1일마다 물품 제조·구매액의 0.075%로 부과된다. 기존에는 방산물자로 지정된 품목이어서 체계업체가 협력업체를 선택할 수 없던 경우라도 협력업체의 귀책 사유로 납기가 늦어지면 체계업체가 계약금액 총액을 기준으로 지체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로 인해 사업 참여 업체들의 경영부담이 증가하고 지체상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체계업체가 협력업체를 선택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협력업체의 귀책 사유로 납품이 늦어지면 계약금액 총액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협력업체가 하도급에 따라 계약한 금액만을 납부하도록 제도를 개선키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체계업체 A사가 협력업체 B사를 지정 받은 뒤 방산물자 C를 총계약액 1조원에 수주했고, 그중 B사는 총계약액의 10% 1,000억원어치를 하도급으로 계약했다고 가정해보자. 아울러 B사가 부품 납기를 열흘 지연해 C제품을 A사가 계약일보다 10일 늦게 납품했다고 전제해보자. 이 경우 과거 제도대로라면 당국은 A사에 총계약액인 1조원을 기준으로 총 7,500만원의 지체상금을 부과하게 된다. A사는 해당 지체상금중 10%인 750만원은 B사에게 청구해 받고 나머지 6,750만원을 억울하게 실부담하게 된다.
반면 새로 개선된 제도를 적용하면 당국은 총계약액인 1조원이 아닌 B사의 하도급 계약액 1,000억원을 기존으로 지체상금을 계산해 총 750만원만 A사에 부과한다. 이를 부과 받은 A사는 해당 750만원을 귀책사유가 있는 B사에 청구하기 때문에 실부담액은 0원이 되는 것이다. 지체 원인 제공자만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합리적인 구조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이 현재 최신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 관련 900억원의 사상최대 지체상금을 부과 받은 대우조선해양 건에도 소급적용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번 제도개선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지체상금의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차원이며 대우조선해양의 건에 대해 이번 제도 개선내용을 적용할 수 있을지는 계약담당부서 등과 협의가 이뤄져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이 불복해 소송을 진행 중인만큼 먼저 법리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귀책 여부를 가리는 것이 선결돼야 할 것 같다고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소송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귀책이 없거나 매우 경미하다면 법원의 중재를 거쳐 방사청이 지체상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주는 경감방안을 선택하거나, 소송에소 대우조성해양이 승소시 방사청이 항소를 하지 않는 방안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총 1조원 규모의 국산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 건조사업을 수주했지만 총 33억원 규모의 어뢰기만기 등을 납품하는 중소 협력사가 군의 시험평가를 충족하지 못해 납기가 크게 지연됐다. 해당 중소 협력사는 대우조선해양이 선정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존 지체상금 제도에 따라 1조원 규모의 계약총액을 기준으로 900억원의 지체상금이 체계업체인 대우조선해양에 부과돼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