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중대재해땐 오너까지 법정行…'안전관리' 기준은 기업에 떠넘겨

[중대재해법 밀어붙이는 정부]

■중대재해법 해설서 뜯어보니

경영책임자, 대표·기관장으로 규정

바지사장 등 형식적 대표는 불가

면책 가능한 안전 시스템 조성은

가이드라인 없어 혼선만 커질 듯

안전보건 종사자 의견반영 조항

되레 노사갈등 유발할 가능성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노사 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법은 처벌이 아닌 재해 예방이 궁극의 목적(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라며 “안착되면 산업재해 사고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안전 보건 관리 체계에 대한 명확하고 보편 타당한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결국 무산됐다며 경영에 미칠 불확실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현행법대로 시행될 경우 경영책임자는 물론 기업 오너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고 산업 현장 혼란, 노사 간 갈등이 예고되기 있기 때문이다.

◇부문사업 대표 인정했지만…바지 사장 불가 원칙=고용부가 17일 공개한 231쪽 분량의 중대재해법 해설서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위(중대재해법 제2조)다. 법에서는 ‘경영책임자 등’을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책임자 또는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 담당자로만 규정했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해왔다.

고용부는 해설서에서 기업의 경우 대표, 정부 기관의 경우 기관장이라고 예를 들었다. 단 통상 ‘바지 사장’으로 불리는 형식적 대표는 안 된다는 게 고용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경영책임자는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조직·인력·예산 등 전체 부문의 의사결정권자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이는 안전 보건 업무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중대재해법을 위반하면 오너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안전 보건 업무 담당자를 별도로 두더라도 대표의 책임 의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경영계 입장에서는 하나의 법인에 복수 사업 부문을 두는 경우 각 사업 부문의 경영책임자를 인정한다는 고용부의 새로운 해석을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하기 위한 편법적인 사업 분할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노동계의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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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피할 수 있는 체계…기업 자율에 맡겨=중대재해법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안전 보건 관리 체계 확립(중대재해법 제4조)이다. 안전 시스템 조성에 목적을 두고 ‘막을 수 없는 사고’까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게 고용부의 일관된 메시지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안전 보건 관리 체계에 관한 9가지 법적 의무 사항을 최대한 구체화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고용부의 해설서를 보면 경영계의 ‘갈증’이 완전하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 전담 조직의 구성원은 2명 이상으로만 정하고 합리적인 인원으로 구성하라고 모호하게 규정했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예산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인에 대한 점검을 어느 수준으로 어느 선까지 해야하는지도 명확한 기준 없이 기업 자율에 맡겼다. 이는 기업 규모에 맞춰 적정한 시스템을 만들라는 취지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시스템을 갖췄는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안전 보건 관리 체계에 대한 정부 인증과 같은 대안이 필요하지만 고용부는 선을 그었다. 권 본부장은 “기업의 문제는 기업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인증·페이퍼 등으로는 현장에서 은폐된 위험 요인을 개선하고 안전 중시 문화를 안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안전 요구인지, 근로조건 개선인지…노사 갈등 가능성=중대재해법이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튈 수 있는 지점 중 하나가 노사 관계 악화다. 시행령 제4조에 담긴 안전 보건 사항에 대해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해당 조항은 현장 위험은 근로자가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장 의견을 반영하라는 취지다. 이를 기초로 기업은 반기 1회 이상 점검을 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종사자의 의견을 재해 예방 확보를 위해 사측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다. 해설서는 경영비밀 침해, 과도한 예산 요구, 근로조건의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요구는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법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과로나 위험 작업인 탓에 2인 1조 작업을 건의할 경우 요청이 안전개선 요구인지, 근로조건 개선인지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인 1조 작업의 정례화는 그동안 노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한 제도다. 실제로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제정할 때도 노동계는 2인 1조 작업을 강하게 요구했다. 반대로 사측 입장에서는 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할 유인이 생겼다. 근로감독이 사측의 정당한 권리인지 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인지를 두고 노사는 지속적으로 갈등을 벌여왔다.

추가로 기업들이 법 적용에 어려움을 느낄 지점은 중대재해법과 관련된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해설서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근간이 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해 광산안전법·원자력안전법·폐기물관리법 등 10개 법령에 따라 근로자에게 안전 교육(시행령 5조)을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양종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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