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동십자각] 여전히 외로운 섬, 독도

김경훈 디지털편집부 차장

김경훈 디지털편집부 차장김경훈 디지털편집부 차장




# “탕!” 한 발의 총성이 고요한 하늘을 찢는다. 수천 마리의 괭이갈매기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어 사방에서 섬이 떠나갈 듯 총성이 울려 퍼졌다. 섬을 포위하며 접근하던 3척의 1,000톤급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 중 한 척에 박격포탄이 날아가 박혔다. 뱃머리에 있던 몇 사람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함정들은 다급히 동쪽으로 달아났다. 엄호를 위해 날아왔던 비행기도 곧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이 쓴 1954년 11월21일 교전 기록이다. 33명의 작은 의병 조직이었던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섬, 독도 누적 입도객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에 따르면 2005년 3월 독도 입도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일반인에 전면 개방된 후 지난 10월까지 267만 4,294명이 독도를 찾았다.



이 가운데 독도 땅을 밟은 입도객은 전체의 77.4%인 206만 8,694명이다. 지난해까지 입도객은 196만 7,572명이었으나 올들어 10만 1,122명이 입도하면서 200만명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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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고 뭉클한 수치를 한 꺼풀 벗겨 생각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60만명이 넘는 인원은 독도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발을 돌려야 했다. 입도 가능한 날이 많아야 한 해 50~60일에 불과한 기상여건 탓도 있겠지만 파도가 조금만 쳐도 방파제 없는 접안시설에 배를 댈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고 관광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독도입도지원센터 건립을 약속했다. 2009년 기초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을 거쳐 2012년 실시설계를 마치고 연면적 595㎡, 지상 2층 규모의 지원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1월 국무총리 주재 장관회의에서 보류를 선언한 뒤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20억원 가량의 예산도 편성 중이지만 실제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아직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2000년부터 매년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25일 대한제국칙령 41호에서 독도를 대한제국 관할구역에 포함하도록 명시한 날을 시민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따온 것이다.

끊임없는 일본의 도발 속에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권 안팎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발의됐던 '독도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된 뒤로 여전히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있다.

“쇼하러 독도 오는 정치인들보다 낫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민간 외교”. 한 인기 먹방 유튜버가 지난 독도의 날을 맞아 울릉도에서 진행한 방송을 두고 네티즌들이 내놓은 찬사다. 그 감동의 여운은 더 이상 없고 독도는 여전히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 서 있다.


김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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