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기아가 반도체 수급난을 이겨내고 유럽 시장에서 현지 완성차 브랜드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전기차도 발빠르게 맞춰 출시한 만큼 유럽에서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15일 자동차 시장조사 업체인 베스트셀링카에 따르면 지난달 기아는 지난해 동기보다 57.1% 증가한 2,679대의 차량을 판매해 스웨덴 현지 브랜드인 볼보에 이어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볼보는 전년 동기 대비 31.1% 감소한 3,334대를 판매했다. 폭스바겐은 같은 기간 판매량이 49% 감소해 2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현지 브랜드 ‘스코다’가 자리잡고 있는 체코에서도 현대차의 약진이 눈에 띈다. 현대차는 지난달 체코에서 전년 대비 51.9% 증가한 2,095대를 판매했다. 판매량 순위도 3위에서 폭스바겐을 제치고 한 단계 올랐다. 기아는 35.4% 증가한 956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7위에서 3위로 수직 상승했다.
러시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가 본토 브랜드 ‘라다’를 협공하는 모양새다. 기아는 지난 11월 1만 4,514대, 현대차는 1만 4,395대를 판매하며 나란히 러시아 시장 판매량 2·3위를 기록했다. 두 브랜드의 판매량을 더하면 2만 6,373대를 판매한 라다보다 많다.
이 같은 유럽 판매량 증가는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수급난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폭스바겐은 앞서 반도체 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10월 초부터 중순까지 볼프스부르크 공장 생산량을 감축했다. 볼보 역시 지난달 15일 벨기에 겐트 공장을 멈춰 세우는 등 반도체 수급난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반도체 공급망 관리를 통해 생산량을 유지했다. 베스트셀링카는 “현대차와 기아는 반도체 위기의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현대차·기아의 유럽 맞춤형 모델이 현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기아가 해치백을 선호하는 유럽 현지 입맛에 맞춰 출시한 씨드는 지난달 스웨덴에서 유일하게 1,000대 이상 팔린 모델로 집계됐다. 체코에서 1,150대 팔린 현대 i30는 스코다 옥타비아를 73대 차로 바짝 쫓았다. 올해 투입된 현대차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바이욘 역시 4월 판매 집계 이후 10월까지 유럽 전역에서 1만 대 넘게 팔렸다.
현대차·기아가 일찌감치 전동화 전략을 설정하고 전기차 모델을 내놓은 만큼 이 같은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올 10월까지 유럽 누적 판매량 1만 2,219대를 돌파했으며 기아 EV6 역시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며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오닉5와 EV6는 2022년 유럽 올해의 차(COTY)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10월까지 유럽 시장에서 각각 4.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현지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처음으로 통합 점유율 7%를 넘긴 데 이어 올해 8%대 점유율 달성이 유력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기아 유럽 내 판매 호조는 SUV, 현지 전략 모델, 친환경차가 삼박자를 이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판매 성장에 힘입어 시장 입지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