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를 설계하는 경제 부처 관료들이 무기력증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주요 정책의 주도권이 청와대와 국회로 넘어가면서 엘리트 관료들이 당청(黨靑)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결과다. 정부의 국정 파트너가 돼야 할 여당 대선 후보조차 경제 부처를 향해 “따뜻한 안방에서 벗어나라”는 독설을 쏟아내면서 더 이상 공직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민간 기업으로의 이직을 고민하는 관료들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서울경제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5개 경제 부처 과장급 이상 관료 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9.3%가 ‘민간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경제 관료 10명 중 7명이 공직에 회의를 느껴 사표까지 쓸 생각을 하는 셈이다.
세종 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관료는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 정부 부처에 남아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과 소명 의식이 점점 희박해진다고 느낄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주요 경제정책의 방향이 이미 ‘윗선’에서 정해진 채로 내려올 때가 많아 후배 공무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조차 자괴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는 게 고참급 관료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이번 설문에서 ‘현재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이 행사하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2.2%가 ‘청와대’를 꼽았다. ‘국회’라고 답한 비율은 22.7%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기재부와 각 주무 부처라고 답한 경우는 각각 14.8%와 8%에 불과했다. 상당수 관료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곳으로 정부 부처가 아닌 청와대와 국회를 지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이 늘어난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이 더 많아졌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7%가 동의했다. 이전 정부와 비슷하다고 답한 비율은 45.5%였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경우는 14.8%에 그쳤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기재부 해체론’에 대해서는 경제 부처 관료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해체해 기능을 분산하는 게 맞다’는 응답과 ‘현재처럼 유지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맞다’는 응답이 각각 51.1%와 48.9%로 갈리며 팽팽히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