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뮤지엄(New Museum)은 뉴욕 맨해튼 로워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1977년에 독립 큐레이터 마르시아 터커(Marcia Tucker)가 설립했다. ‘뉴 뮤지엄’이라는 이름답게 이 미술관은 설립 이래로 ‘새로운’ 미술과 ‘새로운’ 담론을 소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왔다. 미술관 운영방식과 프로그램도 타 미술관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설립 초창기에 뉴 뮤지엄은 컬렉션을 항상 새롭게 유지하기 위해 미술관 소장품을 사고팔 수 있는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 미술관들이 영구적인 컬렉션을 지향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파격 행보였다. 아직 대중적으로 노출 되지 않은 숨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주로 소개한 것도 기존 권위주의적인 미술관들과는 달랐다. 현재는 유명 작가가 된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와 폴 매카시(Paul McCarthy) 등을 처음 대중에 소개한 곳이 바로 뉴뮤지엄이다.
숨은 진주 같은 아티스트 발굴에 힘쓰는 뉴 뮤지엄은 지난 2009년부터 3년을 주기로 트리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그 다섯 번째 트리엔날레가 한창이다. ‘부드러운 물, 단단한 돌(Soft Water Hard Stone)’이라는 제목으로 마고 놀턴, 자밀라 제임스, 자넷 비숍, 베르나르도 모케이라 등 4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큐레이터뿐만 여럿일 뿐 아니라 아티스트도 다양한 대륙에서 참가했다.
전시 제목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브라질 속담에서 유래했다. 이 속담은 미미한 현상이더라도 지속되면 결국에 의도된 효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와 시간은 상당히 단단한 물질도 파괴할 수 있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폼고 있다. 제목처럼 이번 제5회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에서는 그간 외면받아왔지만 꾸준히 ‘변화'를 다뤄온 작업들이 다수 소개됐다. 역사적으로 소외 당했지만 계속 유지된 성소수자의 담론, 미술사에서 외면받았던 재료·테크닉에 대한 담론들이 시각화돼 있다.
전시는 미술관 2,3,4층에서 만날 수 있다. 맨 위층인 4층에 들어서면 드럼통을 쌓아올린 설치 미술과 평면 회화, 거대한 조각, 연필 드로잉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복합적인 매체의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이 층에 설치된 이강승 (Kang Seung Lee) 작가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작가는 지난해 제13회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최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LA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는 이 작가는 성 소수자에 대한 담론을 중심으로 퀴어 역사와 시각예술의 교차점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과거 이성애자 남성 위주의 사회로부터 소외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러한 인물의 흔적은 시간·노동집약적인 작업인 드로잉과 자수 작업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성소수자 등 외면받았던 담론의 시각화 뿐만 아니라 전통 재료, 테크닉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작업들도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공예로 한정돼 왔던 세라믹(도자)이 재조명 받는 작업들이 흥미로웠다. 에린 제인 넬슨 (Erin Jane Nelson)의 세라믹 작업은 세포의 유기적 형태를 연상시키는 개별 세라믹 작품들이 하나의 군집을 이루며 우리가 사는 사회를 시각화하는 것 같은 작품들이다. 작품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세라믹 표면에 작가가 아카이빙한 사진들이 붙어 있다. 환경,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함축한 사진들이다. 세라믹의 원재료가 되는 흙은 사진 속 공간의 토양을 일부 포함시켜 작가의 생각을 한층 강화시킨다. 이처럼 원초적 재료인 흙과 순간의 시간을 담고 있는 재료인 사진의 결합은 기존 세라믹의 디자인적 기능을 넘어 정치적인 영역까지 포괄한다. 2층에 설치된 카릴 로버트 어빙 (Kahlil Robert Irving)의 작업들도 기존 전통적인 세라믹의 영역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같은 층 다른 전시장에 있는 러시아 작가 에브게니 안투피예프(Evgeny Antufiev)의 작업은 우상처럼 여겨졌던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조각들을 완전히 다른 재료로 전환시켜 보여준다. 단단하고도 매끄러운 대리석의 신화 속 조각들이 작가가 선택한 가짜 대리석, 테이프, 천과 같이 주변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재탄생했다. 어색한 형태로 다시 태어난 고전 조각들을 통해 우리가 우러러보고 떠받들었던 신화와 미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대 속에서 미미하지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변화'가 어떠한 바위를 뚫을지를 예상하는 것은 우리의 현재 고민이자 과제이다. 이번 전시는 몇 세대를 걸쳐온 과거의 다양한 낙숫물들을 작가의 작업을 통해 미래의 낙숫물은 과연 어떠한 것일지 상상해 보게 해주는 기회이다. 제5회 뉴 뮤지엄 트리엔날레는 올해 1월 23일까지 열린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