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인터뷰] 은희경 “낯선 곳에서 자신의 맨 얼굴 마주하는 이야기죠”

■ 뉴욕 배경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출간

이방인으로서 겪은 경험·감정

편견·고정관념 등에 질문 던져

아픔 겪던 인물, 자기 객관화로

타인에 상처 주는 존재 깨달아

신간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출간한 소설가 은희경이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문학동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신간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출간한 소설가 은희경이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문학동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영화 속 뉴욕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증권거래소, 센트럴파크 주변 미술관과 박물관, 높고 현란한 전광판 등을 배경으로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현지인들과 뒤섞여 바쁜 일상을 보내곤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뉴욕에서의 삶은 일종의 ‘로망’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도시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끔찍한 더위와 추위, 가로막힌 창문과 좁은 집, 저녁 길거리에 쌓인 검은 쓰레기 봉투와 악명 높은 교통 체증은 뉴욕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도시라는 공간만 그러할까. 사람은 어떨까. 도시의 이중적인 모습과 과연 다를까. 이는 작가 은희경이 최근 신간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통해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은희경을 만났다. 은희경은 “익숙한 공간이나 환경에서는 깨닫지 못했던 편견이나 고정 관념을 낯선 공간에서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며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로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생각도 달리 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책은 네 개의 연작 소설로 구성돼 있다. 배경은 모두 뉴욕이다. ‘낯선 공간’을 대표할 도시로 뉴욕을 꼽은 이유에 대해 은희경은 “지인이 뉴욕에 있어서 최근 10년 동안 자주 다녀왔고, 몇 달씩 머물기도 했다”며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도 내 삶이 책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은희경은 “한국에선 많은 걸 갖고 있지만 그곳에서는 소수자이고 이방인이고 약자였다”며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감각이 달랐고,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단순히 여행객이었을 때는 환대를 받지만, 그 공간에 (깊이) 들어가 보면 차별도 느끼고, 같이 부대끼며 살다 보면 내 안의 편견도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신간 '장미의 이름 장미'를 출간한 소설가 은희경이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문학동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성형주기자신간 '장미의 이름 장미'를 출간한 소설가 은희경이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위치한 문학동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성형주기자



각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연령대가 다르다. 뉴욕을 찾아간 이유도 제각각이다. 첫 번째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한국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해 뉴욕에 사는 친구 민영을 찾아가는 승아의 뉴욕 열흘 체류기다. 승아는 민영의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뉴욕의 거리를 자유롭게 누비는 자신을 상상하며 충동적으로 태평양을 건넌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을 반겨주리라 기대했던 민영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민낯을 드러낸 도시도, 친구도 승아에게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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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주인공은 이혼 후 홀로 뉴욕으로 떠난 마흔 여섯 살의 여성 수진과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다. 같은 이방인이지만 언어와 문화적 배경, 나이가 모두 다른 두 사람의 관계에는 불편과 오해가 필수 옵션처럼 작동한다. 지난해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 대해 은희경은 “수진은 자신이 피해자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마마두와 지내면서) 자신 역시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며 “낯선 환경, 낯선 곳에서 맨 얼굴이 되고, 타인의 얼굴도 그런 식으로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는 글을 쓰는 대학원생과 50대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 역시 뉴욕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타인과의 관계를 그간 관성적으로 해석해왔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등장인물들의 뉴욕 일상도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은희경은 “모든 소설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사람들이 서로 오해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라고 웃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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