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부동산 불평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부동산, 설계된 절망

리처드 로스스타인 지음, 갈라파고스 펴냄





책 ‘부동산, 설계된 절망’은 진보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미국 사회의 부동산 불평등 심화가 단순히 시장 논리를 무시한 정책 때문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미국 현대사·정책 연구자인 저자 리처드 로스스타인은 ‘국가는 어떻게 승자가 정해진 게임을 만들었는가’라는 부제대로 국민 개개인의 부동산 욕망 추구 뒤에 숨어있는 국가라는 존재를 드러낸다. 개발 구역 선정과 지원금, 도로와 공공서비스 확충, 주택담보대출 보증과 세액공제에 이르기까지 중립적인 척하는 정부 정책들과 법안들이 백인과 흑인간의 불평등한 주거 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공산주의 발흥을 막기 위해 주택 소유를 장려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연방주택관리국(FHA)을 창설해 백인들의 널찍한 공영 주택 소유를 지원했다. 백인들이 파격적인 조건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동안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은 임시주택에 살았다. 나중에 흑인들은 교외 주택으로 떠난 백인들이 버린 빈집을 물려받았고 정부 지원이 줄자 그 동네는 금방 슬럼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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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역시 은밀한 주택 차별 정책을 펼쳤고 술집·나이트클럽 등 이른바 위해 시설은 흑인 동네에서 허용됐다. 흑인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도 높아졌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흑백 주거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잇따라 나왔지만 이미 백인 중산층 주택은 흑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뛴 뒤였다.

책은 인종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 도시 공간이 어떻게 배분됐는지 알려주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한 동네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공존했지만 지금은 주택 소재지 자체가 신분과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논밭이 몰려있던 강남은 지하철 등 정부 지원에 힘입어 부의 대명사가 된 반면 강북은 여전히 낙후돼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는 미국처럼 생활, 교육, 자산 수준에서 세대를 이은 불평등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비인기 지역에서도 ‘내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있다. 오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성난 부동산 민심이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자 여당 후보마저 공급 확대론에 가세한 상황이다. 이 책은 좋은 주거지 확대도 중요하지만 도시 공간 구조 자체가 차별 강화, 세대간 이동성 약화, 정치적 의사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정책 당국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만5000원.


최형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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