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신냉전 구도가 갈수록 선명해지면서 차기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외교적 시험대에 들게 됐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현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인 전략적 모호성을 계승할지, 한미 간 전통적 동맹 관계 회복에 중점을 둘지를 놓고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오는 9일 대선 결과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李 ‘실용외교’·尹 ‘동맹 회복’=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계승한다. 외교 사안에 있어서 어느 편을 명확히 들기보다는 현안마다 실용적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주창하고 있다. 앞서 이 후보는 TV토론회에서 ‘취임 후 미국의 조 바이든, 일본 기시다 후미오, 중국 시진핑, 북한 김정은 중 누구부터 만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때 상황에 맞춰 협의해 보고 가장 효율적인 시점에 가장 효율적인 상대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중국·북한에 대한 현 정부의 굴종적 태도로 무너진 전통적 동맹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윤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외교·안보 부분은 전부 한미 동맹 관련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한미 연합훈련 정상 시행, 외교·국방(2+2) 협의체 가동 등을 통해 한미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겠다는 게 윤 후보의 생각이다. 안보협의체 ‘쿼드 4개국(미국·인도·일본·호주)’ 가입도 점진적으로 모색하겠다는 기조도 내비쳤다. 그는 앞서 TV토론회에서 똑같은 질문에 대해 ‘미국·일본·중국·북한’ 순으로 만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중·대일 관계 인식도 시각차 뚜렷=중국·일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차이가 확연하다. 이 후보는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고 일본과는 정경 분리의 투트랙 기조로 실용적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윤 후보는 ‘당당한 외교’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한·미·일 안보 협력 구조를 바탕으로 중국과 상호 존중하는 외교를 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특정 국가와의 관계 강화 대신 남·북·미·중 ‘평화 선언’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北 제재 입장은 수렴=주목할 대목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이·윤 후보의 입장이 어느 정도 수렴한다는 부분이다. 이 후보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때마다 협력도 단계적으로 늘린다는 민주당 정부의 노선을 따라가면서도 ‘스냅백(약속 위반 시 제재 복원)’을 조건에 추가했다. 윤 후보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국제적 대북 제재를 유지한다는 보수 정당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면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경제 지원이 가능하다”고 공약집에 적시했다. 즉 두 후보 모두 협력·지원과 제재·압박 두 카드를 북한의 태도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