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1214원을 돌파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소폭 늘면서 넉 달 만에 증가 전환했지만 경제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기 상황인 만큼 보유량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9원 60전 오른 1214원 20전에 거래를 마쳤다. 1차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205원이 뚫리자 2차 저항선인 1210원도 쉽게 내준 것이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20년 6월 22일(1215원 80전) 이후 약 1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미국 긴축 우려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악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화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1210원 저항선이 뚫리면 1230원까지 추가 상승할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자본 유출을 방어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에 못 미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617억 7000만 달러로 올 1월 말(4615억 3000만 달러)보다 2억 4000만 달러 증가했다.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10월 말(4692억 1000만 달러) 이후 3개월 동안 75억 달러 넘게 줄어든 것에 비하면 소폭 증가에 그친 셈이다. 지난달 미국 달러화의 가치 하락으로 기타 통화 외화 자산의 환산액이 늘어난 만큼 최근 달러화 강세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다시 줄어들 가능성도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제시하는 외환보유액 적정 수준을 이탈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0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사상 처음으로 IMF 기준에 미달한 상태다. 경제성장으로 수출액이나 통화량은 빠르게 늘었는데 외환보유액은 그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한은은 현재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외 환경이 급격히 바뀌는 만큼 고유동성 자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기준 외화 자산 중 현금성 자산 비중은 5.1%다. 외환보유액이 6302억 달러로 세계 4위인 러시아도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120억 달러에 불과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러시아 사태로 가치 저장 수단으로써 외환보유액의 축적 의미가 훼손되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동성 확보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에는 중앙은행에 대한 기후 변화 대응 요구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외환보유액 운용 목표인 안전성·유동성·수익성과 배치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러시아 사태를 봤을 때 우리나라도 외환보유액 확대와 함께 고유동성 자금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