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가장 나다운 것을 나답게 하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목소리가 한 곡의 가요로 인식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사운드만 넣고, 그 외엔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면, ‘이게 장기하다’?”
장기하가 지난달 22일 발매한 첫 솔로 미니앨범(EP) ‘공중부양’은 지난 2018년 활동을 종료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 보여줬던 음악적 모습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 등 수록곡들은 말맛과 운율을 극대화한 가사와 독특한 리듬을 들려주는데, ‘싸구려 커피’, ‘그렇고 그런 사이’, ‘키읔(ㅋ)’ 등 과거 곡들에서 많이 들어본 것들이다. 밴드의 사운드를 뺀 빈 공간에 판소리 가락을 샘플링하거나 본인의 목소리를 믹싱해서 넣으며 전자음악의 성격이 강해졌을 뿐이다.
장기하는 최근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앨범 준비 과정을 전하며 “장기하란 뮤지션의 가장 큰 정체성이 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데 2년 정도를 썼다”고 말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내 목소리를 목소리답게 활용해서 만드는 게 진짜 정체성’이었다.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덕분에 사운드의 바탕을 깔아주는 베이스조차 들어가지 않아서, 붕 뜬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몇몇 곡은 외로움의 정서가 두드러진다. 밴드를 마무리하고 파주에서 2년간 살았다는 그는 “중요한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익숙한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게 중요하다 싶었는데, 2년이 지나니 생각보다 외로웠다”고 돌아봤다.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에서는 부러움을 둘러싼 이중적 상황을 노래한다. 가사를 통해 장기하는 부럽지가 않으니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말하지만 곡 전반엔 은근한 부러움의 정서가 깔려 있기도 하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 역시 뭔가를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럽지가 않은 말과 마음의 불일치를 표현한다. 그는 이 곡을 만들며 “부러움이 중요한 감정이라 생각했다”며 “소셜 미디어 시대에 부러움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진다.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기하는 솔로 뮤지션으로서 본격 나서면서 다양한 걸 준비했다. 우선 오는 17일부터 27일까지 하는 첫 단독 공연이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시절 같은 밴드 편성이 아니라 DJ 디구루의 전자음악 사운드에 안무가 윤대륜이 함께 하는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 될 예정이라고 하며, 티켓은 이미 매진됐다. 이 공연을 준비하다가 앨범 발매도 작년에서 올해로 미뤄졌다고. 장기하는 “공연을 통해 이번 앨범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한 순간, 한 장면 모두 특별히 준비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앨범 재킷과 가사집에 사용했던 채희준 디자이너의 글씨체는 ‘기하체’라는 이름으로 이달 중 공개할 예정이다.
여러 뮤지션들과의 작업 가능성도 열어뒀다. 장기하는 “이번 앨범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면 앞으로 어떤 이와 무슨 작업을 해야겠다는 계획이 생길 것 같다”며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이들과 작업해 싱글을 한 번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만 40세인 올해부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작업하다 보면 자신의 40대는 오롯이 솔로 뮤지션으로서 채울 것으로 예정된 게 아닐까 하고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