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청와대 부지는 국민께 돌려드릴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이전부터 청와대를 벗어난 ‘광화문 대통령’을 약속했다. 윤 당선인 측은 “기존 청와대에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용산의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결정하며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기존 종로구 청와대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일 문화계에 따르면 청와대 부지는 녹지 공원을 비롯해 기념관 성격의 박물관·미술관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이곳 부지가 경복궁의 뒤뜰 격인 경무대(景武臺) 자리였고, 청와대 경내에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육상궁(사적)을 포함한 ‘칠궁’이 있는 등 문화재 지역인 까닭에 파격적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려 때 남경(서울)의 궁 자리였던 청와대 터는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외곽의 후원(後園)이었고, 1860년대 중반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부터 부각된 지역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는 “1868년 완료된 고종의 경복궁 중건이 우리 근대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고, 융문당과 융무당에서 진행되는 과거 시험을 고종이 참관하기도 했으며, 1926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사가 경무대 부근에 설치되는 등 청와대 터가 갖는 역사성이 상당하다”면서 “지금의 청와대 본관과 부속 건물들도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축물이지만 대통령이 사용했던 공간으로서 현대 유산으로 볼 수 있다”며 청와대 터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이를 고려해 문화계 원로 및 전문가들이 제시한 청와대 활용 방안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근현대사 박물관 △위인·영웅 기념관 △근대미술관 등으로 축약된다. 공원과 함께 박물관·미술관을 조성하더라도 범용 박물관이 아니라 ‘장소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홍남 서울공예박물관 명예관장은 “국내에 박물관·미술관은 많으나 순국열사나 영웅·위인을 기억하고 기리고 명복을 빌 수 있는 곳이 없는 만큼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제시할 ‘순국위인 기념관’이 필요하다”면서 “청와대 수난사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려할 때도 적합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인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청와대 옆문이 통할 수 있게 길을 터서 조선 시대의 궁궐(경복궁)을 보고 20세기의 성(청와대)을 관람할 수 있게 조성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청와대가 수십 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활용해 미술관을 조성하자는 의견도 상당하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미술관의 역사는 권위적 왕정의 종식과 근대적 국민국가의 실현의 상황에서 출발했다”면서 “청와대 시대의 종식은 한국사에서도 의미심장한 일인 만큼 우리 문화의 근간부터 되짚을 수 있는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한다면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계승해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곳은 1960년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우리 고전문화를 상징하고 평화로운 인상을 줄 수 있다”며 ‘청와대’라 명명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때는 청와대와 인접한 경복궁 안쪽에 군대가 주둔하기도 했으며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침투 사건인 1·21 사태로 청와대 인근에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다. 이후 전두환 정부 때 청와대 인근의 안가가 철거됐고 노태우 정부가 경복궁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대통령 때 처음으로 청와대 앞길이 개방됐고 김대중 대통령은 ‘칠궁’을 일반에 개방하면서 점차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가 국민 가까이로 다가섰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백악산 정상 관람과 신무문 개방이 이뤄졌고, 이명박 대통령 때는 광화문 복원이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앞길 통과시 신분 확인 절차를 없앴고, 청와대 앞 집회를 전면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