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민정수석 폐지에 힘 실어줘야





박근혜 정부 말기의 일이다. 당시 금융감독원을 출입했는데 임원 인사가 예정돼 있었다. 친분이 있는 A 국장이 후보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어 연락을 해봤다. 당시 핵심 보직을 맡았던 A 국장은 금감원 내에서도 임원 승진 0순위로 평가받고 있었다. A 국장은 “운명이 BH(청와대)에 있다”며 말을 아꼈다. “금감원은 민간 기구이고 하물며 원장도 아닌 임원까지 검증을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긴 한데… 과거부터 그래 왔다”며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가 세간의 화두에 오르면서 떠오른 일화다. 민정수석은 태생부터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산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해당 직제를 만들었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맡아 절대권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정수석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권한이 더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딱 한 차례, 김대중 정부에서 잠깐 없앴다가 이후 부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두 번이나 맡았었다. 역대 정부의 민정수석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직까지 올랐다. 문 대통령은 본인의 저서에서 민정수석의 역할과 관련해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심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언급했었다.

관련기사



하지만 정권 말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이 이 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조 전 장관은 도덕성 측면에서 여러 흠결을 지니고 있었다. 국민의 반대 여론이 상당한데도 문 대통령은 이를 강행했고 나라는 절반으로 쪼개져 ‘조국 반대’ ‘조국 수호’ 울림만 광장을 메웠다. 이 과정에서 검찰 개혁의 국민 과제는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소모적인 논쟁만 확대됐다. 과연 민정수석이 민심을 잘 읽고 제 역할을 다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쩌면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민정수석실의 폐해를 최전선에서 느꼈을지 모른다. 민정수석실이 사라져도 당연히 핵심 기능인 민심 청취, 인사 검증, 공직 감찰 등의 역할은 다른 곳에서 맡아야 할 것이다. 여러 기관으로 힘을 분산하고 사정 기능의 집약체를 대통령 직속에 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현재보다 더 민주적인 제도로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금감원의 사례처럼 불필요한 민간 기구 인사까지 간섭하는 일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청와대는 아쉬움인지 항변인지 모를 반응을 내놓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향해 “현 정부에서 하지 않은 일을 폐지 근거로 삼지 말라”고 일갈했다. 결코 바람직한 반응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제 오답 노트를 작성해 새 정부에 도움을 줘야 할 때 아닌가.

강동효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